▲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하늘과 땅 사이에/꽃과 나비가/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목숨이 된 것이 올시다/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합니다. ▲이는 소위 天刑의 시인 故 한하운의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의 한 귀절이다. 한하운의「나는 문둥이가 아니다」는 이 절규는 곧 수천명이나 되는 전국 나환자자녀들의 피맺힌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이들은 오직 부모가 나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외면 속에 고통과 수모를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눈길은 차갑기만 하다. 사회에의 진출은 고사하고 일반 학생과의 공학문제로도 이 어린 싹들의 동삼을 얼마나 많이도 짓밟아 왔던가. ▲나환자녀 중 나병에 감염된 아동은 지금까지 한명도 없다. 나병의 무서움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부모들이기에 자식들에게만은 이 天刑의 아픔을 주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애쓴다. 망국의 예방조치 또한 그렇게 허술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 자녀들은 정착장울 안에서 나환자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현재 이들은 육체의 병보다 더 무서운 정신적인 나환자로 전락돼 가고 있다. ▲소위 「未感兒」라는 용어만 해도 그렇다. 未感이라면 아직은 감염이 안 되었다는 뜻으로 여기엔 앞으로는 감염될 수도 있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말하자면 에비나환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병 앞에 노출되어 있지 않는 사람이 있는. 이러한 뜻에서는 우리 모두가 무슨 병에 대해서든 「未感者」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무책임한 말을 매스콤에서까지 공공연히 쓰고 있다. 이 말이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은 나병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국 93개 정착장에는 현재 약 2만명의 나환자와 그 가족이 살고 있다. 이 정착은 약간의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그 생활이 말이 아니다. 이런 상황 하에서 환자자녀들이 사회에 나와 능력껏 일해정착장의 부모를 돕는 일이야말로 바로 정착장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환자자녀들의 사회진출은 어렵기만하다. 애써 기술을 배워 직장을 구해도 그 정체 (?)가 들어나면 그곳엔 머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위의 차디찬 눈길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구라주일을 맞아 모두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