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주님을 만난 것은 병원이었다.
지금까지 약이란 걸 모르고 자랐고 평소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신체로 남달리 건강을 자부하던 나는 급성간장염으로 76년 봄 부산 메리놀병원을 찾았고 담당의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너무 늦다는 것이다. 순간 앞이 캄캄했다. 옆에 계시던 부모님은 의사선생님을 붙잡고 하나뿐인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나는 두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다.
모든 게 결정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임원하게 되었고 침대에 누워 앞으로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조용히 25년 동안의 내 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그리고 술과 여자와 뒷골목의 어두운 사회에서 방황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뒤늦게나마 통회의 눈물을 흘렸다 말로만 듣던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죽음은 더욱 두려웠다.
누군가 교회에 가자고하면 도리어 화를 냈던 나는 병실 안에 걸린 십자가를 보고 나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애원했다.
『하느님 죄 많은 이 인간을 구하시어 다시는 죄짓지 않고 착한일 많이 하여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주십시오』
병든 환자에게 약이 필요하듯이 죄 많은 나는 더욱 하느님을 찾았다.
주님은 결코 나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나할까.
담당의사 선생님과 인자하신 수녀님의 간호덕택으로 병세는 하루하루 회복되었으며 시간이 나는대로 원목실의 수녀님과 천주님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가지고 수녀님이 주시는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또 재산과 권력과 명예도 죽음 앞에는 무기력함을 매일 죽어가는 여러 사람을 직접보고서 알고, 나의 조그마한 가슴에는 그때부터 한 신앙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죽음 앞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잠시요 눈에 안보이는 것은 영원하다』는 참다운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아울러 종교를 가지고 선하고 착하게 살려는 사람을 바보로 취급하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쾌락과 이익을 위하여 발버둥 쳤던 내 자신이 너무나 저주 서러웠다.
수녀님의 격려에 힘입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몇 권의 종교서적을 읽었다.
또한 매일 저녁 아무도 모르게 병원안의 성당에서 뒤늦게나마 주님을 찾게된 것을 용서하시고 하루빨리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기도 했다.
그 후 나의 정성은 헛되지 않아 2개월의 병상생활에서 일어나 건강한 몸으로 퇴원하게 되었다.
담당의사 선생님도 「기적」이라면서 기뻐하셨고 지금까지 보살펴주시던 수녀님도 매우 기뻐하시면서 교리책 한권과 함께 울산본당신부님께 드리는 소개장을 써주셨다.
나는 소개장을 들고 곧장 울산천수교회를 찾았고 신부님은 나를 따뜻히 반겨주셨다.
바로 길 잃은 양이 목자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생명을 주신 천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리를 배워 6개월 뒤 「라파엘」이란 본명과 함께 성세를 받았다.
교만과 탐욕을 버리고 주님의 자녀로서 새 출발한 것이다. 그로부터 꼭 일 년이 지났다.
이제 주님의 종으로서 말은 바 임무에 충실하며 남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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