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주고받을수록 우리의 정은 깊어만 갔고 그럴수록 저는 저 자신도 모르게 그이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늙으신 몸으로 신경통 때문에 한쪽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 불구된 자식의 뒷바라지를 하는 그분의 가엾은 어머님과 착하고 훌륭한 그분이 너무도 가혹한 시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빨리 그분과 어머님을 도와드리고 싶었읍니다.
웬지 모르게 그분은 제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렬한 강박관념 같은 것이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도 했읍니다.
저는 그런 뜻을 편지에 담아 그분께 보냈습니다.
그러나 회답은 냉냉하기만 했읍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그분의 회답이었읍니다.
그해도 저물고 그 다음해 1월초에 저는 서울 언니 댁에 갔다 오는 길에 다시 그분을 찾아 갔읍니다. 직접 만나 저의 뜻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열띤 토론을 계속했지만 좀처럼 어떤 결론에는 도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로의 의사가 상반될 뿐 아니라 더구나 일생의 문제가 좌우되는 중대한 문제였으니까요.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한철씨 아내가 되겠어요, 결혼하겠어요.』
『안돼요! 그건』
『왜, 안돼요! 안될 이유가 없잖아요』
『그건 감상입니다. 소녀의 센티멘탈리즘에요.』
『아녜요! 감상이 아니예요. 무수히 생각한 결과에요. 저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누가 뭐래도 저는 한철씨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한철씨를 섬길거예요.』
『순아씨! 글쎄, 내말들어요. 사람이란 육체를 떠난 정신적인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없는 거예요. 사람도 동물입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저는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다른 여자와는 달라요』
『정말 딱하군. 그렇다면 돈이라도 있어야 할게아냐? 나는 보다시피 형편없는 가난뱅이가 아니냐 말야. 나중에 순아가 광주리장사를 안 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아?』
『그런 것 저는 상관 안 해요. 오직 당신의 따뜻한 사랑이 있으면 저는 만족해요. 광주리장사가 아니라 구걸을 해 먹고 살아도 좋아요』
『에이 참, 답답하군. 순아씨는 아직 몰라서 그래요. 이 이불속에 숨겨있는 나의 하체가 어떤 꼴인지 보지 못해서 그래요. 자! 순아씨, 그래도 고집을 부린다면 보여드리지. 보여 드릴테니 똑똑히 봐요. 자요! 자, 자…』
그이는 화를 버럭 내며 자기가 덮고 있던 이불을 홱 걷어 치웠읍니다.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그분의 하반신을 보았읍니다. 그분이 이불을 걷어치우는 순간 무섭도록 말라비틀어진 다리를 보고 정신이 아찔했읍니다. 그이는 제가 그것을 보면 정이 떨어져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저럴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 외에는 그저 담담하였습니다.
오히려 제가 도와 드려야한다는 결심만이 굳어졌읍니다. 저는 이튿날부터 그분의 어머님을 도와 밥도 짓고 까맣게 그을은 그릇도 깨끗이 닦아놓고 빨래도하고 그이의 시중을 들어드리며 일주일이란 시간을 금방 보내고 말았읍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읍니다. 어머니의 이해가 있기 전에는 이곳에 더 있을 수가 없었읍니다. 해만 떨어지면 사립문밖을 한발자국도 못나가게 했던 어머니가 만일 이런 일을 아시는 날에는 병이라도 나실 일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저는 드디어 저의 뜻을 가족들에게 말씀드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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