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사회부장을 오래하다 보면 강심장이 되기 마련이다.
『뭐? 겨우 한사람 죽은 사고 가지고 흥분을 하는가?』
경찰에서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젊은 기자에게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다.
하도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귀한 생명들이 한꺼번에 여러 명씩 죽어가는 걸 매일 대하면서 신문에 그것을 계속 취급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언제부터 내가 이처럼「인간경시」풍조에 물들어 버렸는가 하고 놀라게 된다.
『뭐야? 죽은 사람은 없다구? 그럼 별것 아닌데 그냥 들어와요』
하고 말하는 정도에 이르게 되면 죽은 사람의 숫자가 많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 소름마저 끼치게 된다. 이처럼 사람죽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돼버린 게 사회부장이라는 직책 때문인가, 아니면 이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얼핏 생각하기가 힘들다.
내가 지난해 英國에 있을 때 바닷가에 산책을 나갔던 사람이 실족해서 물에 빠져 죽은 사고가 발생했었다. 그런데 그곳 신문과 TV들은「톱ㆍ뉴스」로 야단들이였다. 겨우 한사람이 죽은 것을 가지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었다.
『도대체 당국에서는 그런 위험한 곳에 철책도 치지 않고 위험표시만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직무태만이 아니냐?』
이렇게 매스콤들은 한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을 가지고 공격을 해댔다.
우리나라에서 같으면, 우선 내 자신부터도 한사람이 해변에서 본인의 실수로 죽은 사건쯤은 1단 아니면 2단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말았을 것이다.
화약열차가 폭파해서 한 都市가 폐허화 되다시피 했다 던지, 광산이 무너져 한꺼번에 많은 광부가 죽었다 던지, 고속버스가 뒹굴어 십여명씩 죽었다고 해야 우리는 사건으로 실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돼버린 우리는 확실히「인명 불감증」에 걸린 것으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나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인명 불감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1월 20일 우리들은 매우 놀라운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는데 그때도 역시 우리는 이런 중증의 증세를 느꼈다.
忠南瑞山에서 얼음구멍에 빠진 자식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가 뛰어들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뛰어들어 한집안식구 다섯 명이 연쇄적으로 빠져죽은 사건이 그것이다.
이처럼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눈물겨운 사건이 또 있을까?
이처럼 인간이 본능이상의 위대한 사랑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더욱이「핵가족」시대라 하여 가족의 연대의식이「프라스틱」제품처럼 돼버린 마당에서 이처럼 활화산 같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안겨다준 사건이 그리고 감동을 느끼게 해준 극적사건이 얼마나 되는가?
그런데도 우리 매스콤들은 이와 같은 숭고한 인간정신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한 가족 다섯명이 한꺼번에 연쇄적으로 죽었다는「죽음의 양」과 그 극적스토리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명과 사랑을 존경하는 나라의 신문 같으면 며칠을 두고 이야기가 되고 야단들이었을 것인데도 우리는 대부분 그저 하루의 지면치레로 끝나고 말았다.
더우기 살아남았으나 졸지에 고아가 된 삼남매의 장래에 대해서는 너무들 인색했다.
인명 불감증- 정말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인명에도 불감증에 걸려있는데 하물며 내세의 생명구원인들 더더욱 불감증에 걸린 우리가 아니겠는가? (言論人)
지금까지 최홍길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대전일보 사회부장 변평섭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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