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녀가 내 가슴에 그토록 밀착되어있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리운 정이 되살아난다.
에디나、나보다 3살 아래인 그녀는 항시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섭리를 긍정하는 연분홍빛 해맑은 웃음을 읽지 않았던 나의 벗이었다.
『크리스티나씨 어떻게 그렇게 과감하게 살 수 있어요? 요즈음 나도 많이 생각해요』
사업이랍시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나와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죽음을 안 순간 가슴을 에이는 아픔이 있었다. 이렇게 커다란 실수가 또 있을까?
소설「빙점」에서『누군가 한사람만이라도 이해하여준다면 자살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귀절을 가슴깊이 새겨왔는데 에디나의 죽음으로 더욱 이 말이 새로워진다.
그녀의 쓸쓸한 마지막 말을 듣고도 나중에 茶라도 마시며 이야기하자고 미룬 나의 게으름이 후회의 아픔을 더하여준다.
그녀는 심장마비로 어머니가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가엾게도 혼자 신음하고 있었더란다.
하나의 생명체가 잉태되어 핏덩이로 세상에 나와서 그 뜻을 다하다 가는 것이 천주의 자녀라지만 그녀의 죽음 앞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정녕 하느님의 뜻이라기엔 내 조그만 소견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많던 재주, 노력, 어느 것 하나도 타인에게 모범이 아닌 것이 없었건만 왜 하느님은 그녀를 택하셨는지…?
『저는 내년에 꼭 결혼하겠어요.』결혼에 대해서도 그녀는 긍정적이었다.
아름답고 즐거운 희생, 모든 것이 그녀에겐 희망이였었다.
대학졸업 후 몇 개월을 마리아像이 있는 명동성당 언덕을 오르내리며 인간의 육신이 그토록 덧없는 것이라고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지난 밤 바자회준비로 도자기를 굽던 날 밤새 한잠도 못 잤단다.
도자기란 원래 온 전성을 다하는 것이기에 다행히도 그녀의 그 절실한 기도로 잘 구워졌다.
이제 모두들 우리 곁을 떠난 그녀를 두고 평소에 몸이 약했다고 동정한다.
그러나 유난히 어깨가 굽었고 핏기 없는 그녀의 안색을 보고도 투병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그녀의 육신은 그토록 죽음을 빨리 맞을 수 있는 아픔이었을까?
나는 지금 무언가 잘못된 생각을 하나보다.
『그녀는 우리가 죽였어! 너와 내가 우리 모두가 죽인거야. 그녀가 우리 모두의 숨결이 배어있는 문화관을 떠날 때 그녀는 지쳐있었을거야. 信者들로 구성된 특수 사회에서 분명 뭔가 번민이 있었을거야. 그때 우린 좀 더 그녀를 의식했어야했어. 에디나、주님에게 좀 더 간절한 기도를 바쳐보지 그랬니? 건강이던 우리 인간에 대한 번민이던 왜 좀 더 참고 견뎌보지 못했어.』
主여 나의 벗의 영혼은 분명 천사의 날개를 타고 갔습니다.
엊저녁 꿈에도 통곡하는 나에게 베이지색 부드러운 상의를 입고 생시처럼『
크리스티나씨! 울지말아요. 와보니까 별로 나쁘지 않아요.』창백한 손으로 오히려 내 등을 두드린다.
에디나! 너의 그 신경질적인 빠른 걸음도 그 소박한 웃음도 이젠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구나.
너의 모습이 내 가슴에 오래오래 남게 해다오. 오래 기억할게, 에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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