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특별히 깊이 생각하며, 인생의 덧없음과 아울러 참삶의 깊이와 보다 뜻있는 생의 의미를 찾고, 보다 나은 세계건설을 위한 하느님의 참뜻을 찾아 우리의 전존재를 하느님께로 방향 전환하는 회개를 촉구하게 된다.
빛이요 희망이신 하느님 아들의 탄생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마음을 준비하는 대림절의 회개와는 그 깊이를 달리하는 이 사순절의 회개는 무엇보다도 먼저 땅위의 인간 공동체가 겪고 있는 고통에 하느님이 동참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고통이 결코 무의미 한 것이 아니며 또한 그 고통이 개인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의식케 한다.
무죄한 이의 고통은 생명살해자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자들의 갖가지 죄의 짐을 대신 지는 결과임을 알아야겠고 그것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고통에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겠다. 그러기에 한인간의 고통에 우리도 모두 함께 아파하고 신음해야하며 한인간의 불의와 인간성을 해치는 범죄에 우리모두가함께 분노해야 마땅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회개는 공동선을 해치는 불의와 범법자에게 보다 그에 무관심하고 아무런 의분도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 더욱 시급하게 필요하다.
사순절에 묵상하는 고통의 신비는 현실의 우리사회에 대한 신앙인들의 이러한 두가지 자세를 일깨운다고 보고 싶다.
그러므로 첫째、우리는 우리가 저지르는 사회적 불의에 대한 공동책임으로 고통을 받아들일 자세를 가져야겠다. 무사안일주의 나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이 고통을 우리들 신자들은 깊은 뜻을 갖고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고통이 결코 무의미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마치 한 인간존재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신체적 균형을 잃을 때 병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악이 만연될 때에 인간 공동체의 정상적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병든 가정이나 사회에서, 고통은 그 가정이나 사회의 비정상적 상황을 진단하여 적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받는 고통이든 내 이웃이 당하는 고통이든 그것은 나를 포함한 전 공동체에 가해지는 하느님의경고로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단순한 나의고통 또는 너의 고통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정의 내가 속한 단체의 우리사회의 나아가서는 인류공동체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받아들인 고통을 통해 인간이 하나의 불가분적 공동운명체임을 깨달아야 하겠다. 강물이 폐수로 오염되어 동식물이 죽어 가면 인간이 질병을 갖게 되고 인간의 부주의로 균형을 잃게 된 오염대기가 자연과 인간을 질식시킬 때면 폐수를 흘러내리게 하고 대기를 오염시키는 자연과 생명의 파괴자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제성을 띨 경우 더욱 심각하다.
그것은 전 인류 공동체의 사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을 떠나 타락한 이기주의적인 각본성은 고통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 하겠끔 마련되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것은 동물의 집단본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인간의 고통에 자발적인의지의 동의로 동참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인간 자유의사를 통해 그 신성은 드러나고 인간다움이 이룩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우이웃돕기를 연례행사처럼 치룬다거나 회사나 개인이름의 과시물로 이용한다거나 또 그러한 심리를 이용하는 따위의 풍조로서는 결코 이룩될 수없는 문제성을 안고 있다.
그것은「이 보잘 것 없는 작은 형제에게 해준 것은 곧 내게 해준 것이다」라는 인격적인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비의를 깊이 깨달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인간성의 회복이다.
이번 사순절은 바람직한 사회건설을 위한 누룩의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맞이해야겠다.
이 사회의 병폐를 나의 아픔으로 삼고,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나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아픔으로 승화시켜야 하겠다. 아니, 그리스도의 아픔과 고통을, 나의 아픔과 고통으로, 우리의 아픔과 고통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그리스도 십자가위에서 오늘도 우리에게 외치신다.
『보라! 내가 여기 있다. 십자가에 달린 내가 여기 있다. 너희와 함께, 너희보다 먼저, 지독한 고통을 겪었고, 또 겪고 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사순절은 이와 같이 고통에 동참하고 그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며, 그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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