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이면 저는 성당에도 열심히 나갔습니다.
모두가 생소하고 낯선 얼굴들.
누구 한사람 아는 체하는 이 없고 따뜻이 인도해주는 사람도 없지만···.
부지런히 배워서 영세를 해야 그이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세 받기 전에도 관면혼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저는 결혼식을 올리자고 그이를 졸랐읍니다.
좀 더 떳떳한 며느리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이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안돼요! 그것만은. 순아를 꼼짝없이 새장 속에 가두어놓고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그이는 결혼이라는 굴레를 씌워 불행과 고통, 슬픔과 고뇌가 너울대는 울타리 안에서 일생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고 결심하고 멋모르고 뛰어든 것이니 살다보면 삶에 지치고 힘에 겨워 찬란했던 감상은 차츰 냉혹한 이성으로 변하여 스스로 물러가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역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이를 설득했고 읍으로 달려가 신부님과 수녀님을 붙들고 간청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나 할까. 선뜻 찬성을 안 해주시던 신부님께서 결국 관면혼배를 허락해주셨습니다.
드디어 1970년 1월 11일 금산성당에서는 우리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매섭게 몰아치던 겨울날씨도 그날만은 이상하리만치 봄날처럼 포근하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동녘하늘에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의 광채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왔고 뒷동산의 까치도 힘차게 울어 주었습니다.
결혼식장은 마치 금산읍내 사람이 다 모이기라도 한 듯 손님과 구경꾼들로 성당 안을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성당 종소리의 긴 여운을 뒤로하고 훨체어를 타고 맨 앞에 앉아계시는 그이 곁으로 저는 혼자서 입장했습니다.
「아이구, 저런 신부가 혼자 걸어 들어오지 않아」
「애그머니나 저럴 수가. 쯧쯧쯧···」
제가 누구의 부축도 없이 혼자서 입장하는 것을 본 하객들은 안타까운 듯 혀를 끌끌 차며 애처로와 했습니다.
물론 그날 제 결혼소식을 듣고 그렇게도 반대하시던 어머니와 오빠가 결혼식장에 달려와 주었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제가 택한 길.
이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고달프다하더라도 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겠다는 각오와 결심의 소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윽고 제의를 갖춰 입으신 신부님께서 복사단을 대동하고 하늘나라 임금님처럼 위엄있게 등단하시고 은은하고 장엄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의 혼인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랑 최한철[베드로]과 신부 고종순은 아무의 강박도 없이 완전한 자유의사로 서로 혼인하려고 결정하였읍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이와 저는 힘주어 대답했읍니다. 우리의 혼인은 그 누구의 강박도 있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제 스스로 원했고 더구나 부모형제들의 강렬한 반대를 이겨냈던 것이 아닙니까.
「두 분은 결혼생활을 통해서 일생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겠읍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외에 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돈도 지위도 명예도 건강마저도 없는 결혼-오직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사랑, 아름다운 사랑, 고귀한 사랑.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으면 성을 내지 않고 사심이나 앙심을 품지 않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내며 가실 줄을 모른다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고중순은 최한철[베드로]을 당신의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 일생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겠읍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다짐이라도 하듯 야무지게 그리고 또렷히 대답했습니다.
교회와 하느님 앞에 고백한 이 혼인을 주께서 친히 견고케 하시고 강복하셨으며 또 친히 맺어주신 것을 어찌 괴롭다고 병들었다고 남편에게 사랑과 존경과 신의를 저버리고 사람이 멋대로 풀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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