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접살림은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신혼기의 다른 부부들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상인과는 다른 부부생활이었지만 역시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관면혼인을 받은 지 몇 달 후 그해 4월 부활절에 저는「율리아」라는 본명으로 그토록 원하던 성세를 받았습니다.
비로소 저는 하느님의 자랑스런 딸이 되었고 이때부터 그이는 저를「여보」라고 부르는 대신『율리아. 율리아』하고 불렀습니다.
「여보」라는 칭호보다는 깨끗하고 부담이 없어 좋았읍니다.
그러나 행복의 여신은 우리를 마냥 즐겁고 행복한 생활만을 약속해주지는 않았읍니다.
웬일인지 그이의 건강은 날로 쇠약해지면서 주기적으로 발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병이 나면 사시나무 떨듯 심한한 축을 하다가 그것이 갈아 앉으면 또 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라 용광로처럼 펄펄 끓으며 열이심하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면서 일주일 혹은 열흘씩 앓는 것이었읍니다.
밤이면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뜬 눈으로 같이 밤을 새우며 옆에서 그 고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약한 첩 써보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가 병명도 모르고 남편의 병을 키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속이 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읍니다.
그러기를 몇 달… 저는 하는 수없이 결혼 때 받은 반지라도 팔아서 병원에 가보자고 그이한테 상의해보았지만 선물이라고는 그것뿐이고 그것도 매형이 해준 것을 팔면 그분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그이는 막무가내였읍니다.
그러나 저는 고집을 부리고 금은방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금값이 내려 힘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막막했읍니다. 속은 타고 초조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눈치를 챘는지 종일토록 말이 없으시드니 잠자리에 들려고 하자 그이는 화난 얼굴로 저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읍니다.
아마 그이는 자기의뜻을 거역하고 제가 반지를 팔아버린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게 분명했읍니다.
그렇게 양순하기만 하던 얼굴에 노기가 서린 남편의 표정은 금방 뺨이라도 후려 갈길 것만 같아 몸이 오그라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저는 남편이 때리면 맞겠다고 각오했읍니다.
남편을 위한 일이라면 매를 맞아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이의 병이 낫는 일이라면 제한목숨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읍니다.
『당신 이리 좀 와봐 손 좀 이리 내놔 보란말야!』
『여보 생각해봐요, 그렇게라도 해서 당신병원을 가봐야지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도대체 반지만 끼고 있으면 돼요? 당신 돌아가시고 반지만 끼고 있으면 뭘 해요. 저는 오직 당신만 있으면 돼요. 당신만 건강하게 제 곁에만 있어주시면 저는 행복한 거예요. 돈도 그이상의 아무것도 원치 않아요.』
저는 저도 모르게 참았던 슬픔이 북받쳐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흑흑 흐느끼며 남편의 손이 제 어깨위에서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며 그이도 소리 없이 울고 있었읍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는 남편의 가슴을 밀어제치고 밖으로 뛰쳐 나왔읍니다.
그리고 곧 후회했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슬퍼도 그이 앞에서는 웃어야 하는 것을 오히려 고통과 괴로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제자신이 미웠읍니다.
저는 힘없이 뜨락에 서서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을 쳐다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던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소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꿈의 나래를 마냥 펼쳐보았던 그들은 웬지 모르게 차갑고 싸늘하게만 느껴졌으며 어둠이 삼켜버린 대지는 소름이 끼치도록 고요 적적하여 망망대해에 표류되어 홀로 떠있는 외로움과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읍니다.
참으로 막연했읍니다. 머리 끄뎅이를 쥐어뜯고 싶도록 답답한 심정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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