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유다스가 빠져나간 다음 제자들에게『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이것이 나의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13장34절) 그리고 수난직전에 일치를 위한 기도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하나인 것처럼 우리 신앙의 공동체를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여러 번 반복해 가면서 성부께 간구했다.(요한17장21절)
그런데 우리들의 현재 신앙생활태도는 거기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의 존립목적이 인류복음화에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지키지 않는 복음을 어찌 남에게 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현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공동체의 결합을 바라는 것은 꿈만 같지만 국가 간에 흐르고 있는 전 세계적인 조류를 살펴보면 그 전망이 밝아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특히 UN회원국이 과거에 비해서 배이상 增加되었다는 경이적인 사실을 우연한 일이라고 단정한다는 것은 억측이라기보다 지능도의 문제라고 생각해야 옳을 것이고 지구상에서 괄목할만한 변혁이 이루어지는 이면에는 언제나 인간차원을 초월한 능력 있는 분이 작용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될 때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맥박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과제를 우리에게 맡기시고 높은 곳에서 관망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니고 몸소 평화와 일치의 모체가 되시어 국가 간의 서로 사랑하는 미덕과 전 세계가 한 이웃사촌으로 화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놓으셨고 계속 그 기반을 다지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의 세계지도자들의 움직임을 보고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희생이다.
우리들이 조그마한 희생을 여기에 보태느냐 안보태느냐에 따라서 그 성패가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들은 각자가 그 중요한 위치에 처해있다는 책임의 소재를 알아야 하겠다.
초대교우들이 가족의식의 확대에 의한 공동체적 애정으로 체온을 나누며 호흡을 같이했던 신앙생활태도와 오늘 우리들이 공동체 안에서 교우상호간에 대화의 문을 닫고 남남 간에 서로 처음 보는 사람같이 대하는 신앙생활태도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으로 서전자와 후자의 상황이 극과 극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하겠다.
그리스도께서는 혈육의 결언을 초월한 것이 신앙의 공동체라고 말씀하셨다. (마태오12장48~50) 서로 사랑하고 하나로 결합하고 지연과 혈연을 초월한 것이 신앙의 공동체라고 강조하신 일련의 교훈들을 종합해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태도에는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교우상호간에 대화의 문을 닫고 그리스도와의 대화가 가능할까?
우리들 주위에 약하고 부족해서 대화의 갈증을 느끼고 있는 형제들이 나를 찾고 있다.
하루 빨리 미약한 나의 대화를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우정의 대화를 나누며 형제애를 맺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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