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등록금을 주었는데 군것질과 유흥비로 탕진했다면 묵인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한 두 차례가 아니라면 다시 줄 수가 없고 따라서 자녀는 영예로운 졸업장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그 장본인이 우리가 아닌지 재고해 보는 것도 무의미 하지는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인간에게 주를 찬미하기 위해서 만물이 흉도 낼 수 없는 목소리를 주었는데 모두가 먹고 마시는데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눈만 뜨면 라디오, 전축, TV, 스피커 등 많은 소리가 들려오지만 하느님을 찬송하는 소리는 꿈에 떡 맛보기만큼 듣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그 실력을 가지고 성가대에 나오고 미사에 반주를 권하면 핑계가 여산여해이니 성가는 실뱀소리만큼 들리게 되는 것이다. 19세기 음악가나 화가는 명곡과 명화로 하느님을 찬양해서 심금을 올려주고 눈을 황홀케 했다는데 20세기 첨단을 걷는 현실은 오히려 찬미는 고사하고 그 말만 들어도 물에 티 건져내듯 하는 감이 농후하니 전자의 자녀와 무엇이 다른가?
여하간 곡식이 크지 않고 잡초를 이길 수가 없다면 찬미의 노래가 우렁차지 못하면 오늘의 저속한 노래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흔히 고운 목소리가 제가 잘나서 된 것으로 착각을 하는데 바로 그것이 오산이다.
즉 부모가 돈이 없으면 자녀에게 줄 수가 없듯이 음치 부모가 그 역시 줄 수가 없으며 그것은 하느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건반의 고음이 자체서 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만든 것같이 사람도 그렇기 때문이다.
특히 주의 자녀라면 주님을 찬미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유행가나 대중가요를 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요는 7음계가 있어 곡이 구성되지만 모든 곡이 주음으로 시작해서 주음으로 귀결되듯이 그 주가 되는 주님은 도외시하고 불협화음만 고막을 울리니 하는 말이다.
아이들이 곡을 무시하고 피아노를 치면 시끄럽다고 하는데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는 소음공해가 무사할 것인지 자성해야 되겠다. 더구나 불협화음은 주음으로 해결되듯이 저속가요로 주님께 찬미를 드려야 명랑하게 될 것이다. 지친병사가 군가를 부를 때 피로를 잊고 편한 잠자리에 들어갈 수 있듯이 우리도 소리높이 주님을 찬미해야 오늘의 피로를 잊고 사기가 충천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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