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일로 택시를 잡아 도심지로 향하던 길이었다.
운전석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나는 하마터면 이마를 유리창에 부딪칠 번했다. 차가 급정거했던 까닭이다.
『Ⅹ자식!』
실룩거리는 운전사 입에서 내뱉어진 한마디였다.
차 앞에는 허술한 차림의 노인이 90%쯤 혼(魂)이 나간 상태로 서 있더니 운전사의 욕설을 귓등으로 흘리며 길을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 앞에는 횡단육교가 아닌 지점이었다.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로 아무렇게나 지나갔으니 잘못은 분명 그 행려노인에게 있었다.
그러나 택시 운전사의 일그러진 마음에서 내가 환멸을 느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급정거하기에 앞서, 차들이 붐비는 차도로 노인이 뛰어들었고, 여기에 약이 오른 내 옆자리의 운전사가 차도에 뛰어든 노인을 따라가면서까지 겁을 주려고 장난을 치다가 급기야는 위기일순에 황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던 것이다.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하는 사람 가운데는 고의로 사람을 치어서 숨지게 해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살려두면 여러 가지로 귀찮기 때문에 숫제 즉사케 하는 것이 편하다는 지론이다.
『까짓 거 나야 한 6개월 살다 나오면 그만이라구요!』
끔찍스런 운전사의 말. 어찌타가 인명 경시 풍조가 이토록이나 고질화됐는지 새삼 각박한 사회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이달 4월부터는 부산(釜山)지방의 시내버스 운전사와 안내양의 봉급이 월(月)20일 근무에 25만원과 10만5천원으로 각각 인상된다고 한다. 급료를 올려주기로 한 부산 운수업자들에게 최고위층의 격려친서까지 전달되는걸 보면 이 정도나마 오르는 것이 다행한 일로 여겨진다.
생각하면 하루 20시간 안팎의 중노동을 해야 하는 그들이다. 차를 몰면서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운전사들이고 자기네 나이또래의 여학생들이 책가방을 들고 등하교(登下校)를 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만원승객에 시달리는 안내양들이다.
새벽잠이 모자라 눈을 비비면서『시청 앞 내리실분 앞으로 나오세요!』하는 안내양을 볼 때 측은한 생각이 들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라. 이렇게 수고하는 사람들이 충분한 보수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민에 대한 봉사를 해주기를 전국의 모든 버스 이용객들은 희망할 것이다.
택시 운전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휘발유 값 등 일상경비와 차주(車主)에게 갖다 주는 돈을 제하고 하루 최소한 7천원은 집에 가져가야 한 달 15일 일하고 10만원 남짓 월수입이 되는데 그나마도 힘들어서 교통순경의 눈치를 봐가며「합승」을 시키고는 하는 그들이다.
그러기에 이들에 대한 이해와 동정은 충분히 할 수가이었다. 다만 바라고 싶은 것은 아무리 어려운 여건에서라 할지라도 사람의 생명만큼은 존귀한 것으로 알고 함부로 다루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신을「운전사」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있겠다.
순간적인「오기」나「뒷일이 귀찮아서」불의(不義)를 저지를 것이 아니라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의(義)로운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성화(聖化)의 길을 찾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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