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주와 근로자ㆍ이들은 상부상조하는 不可分의 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상반되는 이해관계로 숱한 불화를 빚는 관계이기도하다. 노사협조를 생산성의 증대와 또 이로 인해 얻어진 기업이윤의 공정한 재분배를 통한 노사관계의 원만한 해결은 기업인ㆍ근로자할 것 없이 모두가 원하는 바이다. 한 경영주 아내의 수기를 통해 노사협조의 방향을 찾아보기로 한다.
<편집자>
40고개를 넘어도 한참 넘은 나이에도 봄이라 그런지 나도 잠을 설칠 때가 많아졌다.
어제도 밤 12시까지 책을 읽고 잠깐 잔 것 같았는데 기척이 이상하여 깨어보니 아빠가 엎드려 담배를 피우시고 계신다. 전에는 잠이 많아 초저녁에 잠드시면 아침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떠 메가도 모를 정도 주무시던 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엊저녁도 내내 말이 없으셨던 것 같다.
아빠는 근심하시고 계신거다.
연기를 가슴속까지 마시고 후-욱 내어 뿜는 아빠를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파온다.
이제 얼마 있으면 종업원들의 월급날이고 큼직큼직한 수표들도 막아야 할 것이다.
직원 60명의 모피가공공장, 아빠는 이 공장의 경영주이시다.
다른 직원들은 아침 8시 출근하여 오후 6시 퇴근하지만 아빠는 새벽 6시면 일어나 사무실에서 사업계획이며 서류검사도 하시고 현장에 나가시어 고장 난 기계도 만지시고 벌써 일을 시작하신다. 때로는 몸에 받지도 않는 술을 며칠 계속 드셔야 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이 작은 공장 때문이다.
아빠는 출근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이 24시간 공장을 위하여 일하시고 구상하시고 하신다.
다른 종업원들은 퇴근하면 훌훌 털어버리는 공장의 일도 아빠에게는 인생의 굴레처럼 벗을 날이 없다. 인건비상승을 포함한 원가상승에서 오는 재정압박으로 하여 기업이윤은 만신창이요 현상유지가 고작이다.
이 사업을 시작하신 후로 아빠 안중에 아이들과 나는 멀리 밀려나있다.
아빠에게는 종업원 60명이 제일의 가족이요, 우리 4식구는 밀려나 의식의 언저리에 겨우 얹혀있는 것 같다.
우리집안의 살림 보다 늘 우선하는 것은 공장과 종업원들의 일이다.
나는 종종 회의에 잠긴다. 무엇을 위하여 공장을 운영하는가? 결국 아이들과 우리식구가 좀 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아빠를 보고 있으면 기업경영의 목적이 자신의 풍요한 생활만이 지상목표가 아닌 것이 틀림없다.
아빠가 제일 흡족해 할 때는 직원들이 자신의 사적인 일을 의논해올 때다.
이럴 땐 만사 제쳐놓고 앞장서 해결해주신다.
그러나 때로 아주 자주 아빠는 배신당한 기분에 사로잡히신다.
사소한 일에 트집을 잡고 무조건 집단행동으로 횡포를 부려 올 땐 일을 해결하려는 것인지 난동을 부려 공장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지 참으로 섭섭한 때가 많다.
얼마 전 가공실 제1테이블에서 한분이 사정이 딱한 것을 알고 남보다 월급을 더 올려주셨다. 월급 다음날 제1테이블의 다른 종업원 14명이 불만을 말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집단사표를 내겠다는 것이다. 계약이상으로 자신들의 월급도 올랐는데 같은 테에블에서 한사람만 더 받는 것이 기분나쁘다는 것이다. 엄연한 차별대우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월급도 똑같이 올려주던지 아니면 그 딱한 사정의 직원의 월급을 자기들과 같은 수준으로 깎아내리라는 것이었다.
아빠는 얼마나 섭섭해 하셨는지…아무리 정을 쏟아도 받을 줄도 몰라주는 종업원들이 야속했다.
아침에 종업원들이 출근하여 작업을 시작하면 공장은 거대한 짐승처럼 그 각기관이 살아서 움직인다.
종업원들은 혈관을 흐르는 피와 같다. 건강한 피가 힘차게 흐를 때 생명체는 살아서 큰 힘으로 움직일 것이다. 종업원 없는 공장은 피가 흐르지 않는 생명체와 같다.
피가 없으면 그 생명체는 죽을 것이요, 피는 있으되 흐를 혈관이 없다면 그 피는 흩어져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근로자와 기업은 공동운명체다. 공동의 운명 속에서 왜! 근로자들 서로가 이해해 주고 보살펴 주지 않을까? 자신들의 울타리인 기업을 왜! 내 집처럼 아껴주지 않을까?
왜! 이처럼 살벌한 것일까?
규모의 차이는 있겠으나 경영주라면 다 아빠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부탁하고 싶다.
근로자와 경영주가 다 같은 공동의 운명 속에 살고 있는 평등한 인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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