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시 아가다가 연탄 찝개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읍니다. 연탄불이 꺼졌나 보지요? 아가다는 23살, D공장에 취직한지 올해로 3년째입니다. 아침 8시40분에 출근하여 저녁 8시40분에 퇴근, 12시간 근무합니다.
퇴근하여 돌아오면 곧잘 연탄불이 꺼지기 때문에 탄불을 얻으려고 자주 오곤 합니다.
종일 근무하고 빈방에 들어오면 아랫목이나 따끈따끈해야 할텐데 얼마나 스산하겠읍니까?
우리고장엔 공장이1백30개이고 1만명에 가까운 사춘기 근로청년들이 아가다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나 외롭게 자취하면서 살고 있어요.
이 대부분의 우리청소년들이 직장에서 돌아오면 한겨울에 자주 연탄불이 꺼진 냉방에서 새우 잠을 잡니다. 같은 나이의 유복한 청소년들은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겠지요.
그러나 학생들도 겨울에는 춥고 캄캄한 새벽길을 4kg이 넘는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또 만원버스에 시달리며 그나마 비좁고 추운 교실,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하루에 보충수업까지 8시간 9시간 공부합니다. 우리 근로청소년들이 직장에서 어려운 노동을 하는 것과 비교할 때 그 고생스러운 것은 학생이나 근로청소년이나 비슷합니다. 하지만 크게 다른 것은 학생들은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가족의 사랑이, 따끈한 아랫목이 기다리고 있지요.
또 그들의 마음 속엔이 고생스럽게 공부하는 시기의 다음에 올 희망찬 장래가 환히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측은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다에게 또 우리 근로청소년들에게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문제점은 바로 이점입니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결여된 점입니다. 어린 묘목같이 여린 몸과 마음의 우리 근로청소년들에게「사랑」이라는 양분과 밝은「희망」이 햇별처럼 있다면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리고 쑤욱쑤욱 커다란 거목으로 곧장 자랄 것입니다. 우리의 건실한 노동은 신성하고 보람찬 것입니다. 학생들의 열심한 수업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 또 우리사회에 그 건실성은 큰 보람을 안겨줍니다. 이 보람위에서 우리 근로청소년들이 건강하게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가까이에 있는 기업주를 포함한 모든 기성세대나 우리 교회가 우리 근로청소년들의 가족이 되어주어야 되겠읍니다. 얼마 전에 방직공장에 다니는 아네스가 찾아왔읍니다.
나는 반가와서 아네스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순간 몹시 놀았어요. 아네스의 손은 오랫동안 빨래며 청소등 살림살이에 거칠어진 내 손보다 더욱 거칠고 딱딱했습니다. 아네스는 방직공장에 근무한지 1년 반입니다. 일이 얼마나 힘든지 그 손을 만지고 알 수 있었읍니다. 일이 힘들어도 육체적으로 괴로운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하네스는 말했어요.
허지만 정신적으로 외롭고 희망이 없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사람은 현실에 아주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물질적인 아무 미천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양의 제한도 없지요. 다만 내가 있고 우리 근로청소년들이 있으면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다 갖추어진 셈입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고 끝없이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옛날부터 한 가족이었던 것을 새삼 느끼고 만나면 무작정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집을 떠나 외롭고 피곤한 근로청소년들에게 가까이에 있는 우리 기성세대가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된다면 우리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근로청소년들의 마음이 기쁨에 가득 찰 때 내일은 희망차고 찬란한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