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생활에서 오는 서글픔이 저를 그렇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반찬도 없는 꽁보리밥을 한술 두술 떠 넣고 있는 남편 막막한 생활대책, 그이의 건강에 대한 미래의 불안감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 한 가지도 힘써줄 수없는 경제력 이 모든 것들이 저를 울리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저희들을 버리시지는 않았습니다. 읍에 있는 남편의 친구 분이하던 곤로상회를 인수받게 된 것입니다. 자금은 비교적 부유하게 사는 그이의 큰 매형께서 선뜻 대주셨읍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었읍니다.
항상 가슴앓이와 간경화증으로 고통을 당하시는 시어머님과 시아버님을 그 외딴 골짝에 남겨두고 떠나오는 발길은 무겁기만 했으나 한 푼이라도 벌어 남편의 건강과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도리가 없었읍니다. 일이 이쯤 되자 우리는 상의 끝에 군산에 있는 시동생의 약혼녀를 앞당겨 데려 올수밖에 없었읍니다.
때가 겨울철이라 장사는 별로 경기가 없었으나 그럭저럭 생활은 되었고 무엇보다 만져 보지못 하던 돈을 손에 쥐어보니 살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도 다 저문 음력 섣달그믐께….
그토록 가슴앓이와 간경화증으로 고생하시던 시어머님과 늘 고혈압으로 고통을 당하시던 그이의 큰누님께서 거듭 돌아가시어 또 다시 우리는 커다란 슬픔에 젖어야 했습니다.
이제 겨우 좀 살아볼까 했는데….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그토록 몽매에도 잊지 못하시고 불쌍해하시던 그 자식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행여나 걷는 날이 있겠지, 행여나 회복되어 떡두꺼비 같은 손자라도 안겨줄 날이 있겠지…
행여나 행여나 하며 한스런 생을 살다가 끝내 눈을 감으신 불쌍한 어머님.
당신 몸이 아무리 괴로워도 자식의 똥을 소매로 받아 낸지 그 몇 해였으며 자식의 밥상머리에 앉아 밥 한술이라도 더 떡 먹으면 좋아라 하시고 그렇지 못하면『어디가 또…』하시며 앉으나 서나 한숨과 눈물이 주름진 얼굴에 마를 새가 없으시던 가련하신 어머님.
그 자식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객지에 나가 고학을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까지 되었으나 만나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을 때는 온 세상이다 내것같고 나 혼자만 자식을 둔 것 같이 좋더라던 어머님.
그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자식이 걷지도 기지도 못하는 병신이 되어왔을 때는 하늘이 내려덮는 것 같아 며칠을 굶어도 배도 고프지 않더라는 어머님.
평생토록 호강스런 생활 한번 못해보고 끝내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에서 다리한번 쭉 뻗고 잠 한번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하시고 병신자식을 부둥켜안고 눈물로 한세상을 살다가 그자식이 장사라도 벌려 이제 좀 살아볼까 했는데 그것도복이라고 세상을 버리신 박복하신 어머님.
그 병신자식을 남겨두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단 말입니까?
그렇게도 마음씨가 고우시던 시어머님이었는데 왜 그렇게 임종은 고통스러우셨는지 하기야 그 자식을 두고 가시려니 어찌 눈이 감길 수가 있었겠으며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 수가 있었겠읍니까?
온 세상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새벽녘 시아버님과 저희들 내외 그리고 시동생내외가 그 외 딴 산골짝 오두막집에서 시어머님의 임종을 외롭게 지켜봐드렸습니다.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포효와도같이 통곡하는 남편…
그전에 항상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자기도 따라 죽으려고 결심해 왔었다는 그이의 슬픔과 자식으로 태어나 효도한번 못해보고 끝끝내 불효를 해야 했던 남편의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저는 시어머님 시신에 머리를 쳐 박고
『당신 자식을 저한테만 맡겨놓고 홀로 가시면 저 혼자 어떡하라고 눈을 감으셨읍니까、어머님!』하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실컷 울었읍니다.
시아버님도 시동생내외도 모두가 슬픔에 몸부림쳤지만 한번 눈을 감은 시어머님은 말이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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