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것, 인간의 부귀와 영화, 고뇌와 슬픔, 질병과 재난, 근심과 고통, 모든 인간적인 것들이 끝나는 죽음, 참으로 그 죽음을 보고 말할 수 없는 회의와 허무를 느껴야 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이 정월초하루라 박복하신 시어머님의 장례는 이틀 만에 치러야했습니다.
상여 뒤를 따라가지도 못하고 휠체어에 올라앉아 멀어져가는 어머님의 상여를 바라보며『어머니-어머니-』하고 소리쳐 몸부림치며 울부짖고 있는 불쌍한 남편, 저는 슬픔을 머금고 그이를 달래야만 했습니다.
『여보 진정 하세요、그만 진정 하세요』
『우리 불쌍하신 어머니 남과같이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세상을 떠나시다니』
『여보、그만 하시라니까요』
『율리아 미안해 당신 앞에서 이런 약한 꼴을 보이다니』
『아녜요 당연한 슬픔 아녜요』
『내가 당신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다시는 이런 약한 꼴을 안 보일께 율리아.
이젠 당신이 어머니 대신이 되었구려, 나는 행복한 놈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요』
『여보 당신이 행복하시다면 저도 행복해요. 당신이 행복한 남편이라면 저도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에요』
우리는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날따라 마구 쏟아지는 함박눈은 우리들 머리 위와 손등에 그리고 온누리에 자꾸자꾸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이란 말입니까?
시어머님을 여윈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보름 후 또다시 그이의 큰누님께서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혈압이 악화되어 그동안 서울에 가계시다가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른 채, 당신 자신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두 분은 서로의 죽음은 몰랐지만 모녀는 하느님 나라에서 기쁨으로 만나 주님의 영광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누워있는 동생이 불쌍해서 그렇게도 안타까와 하시던 누님…
어머니처럼 의지하며 살려고 했던 그 누님이 돌아가시다니 일곱 남매의 어린 조카들을 부둥켜안고 남편은 또 한번 심한 몸부림을 쳐야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약이라고나 할까요.
그 어떤 슬픔과 괴로움도 하루 이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모든 사건들은 하나의 추억이나 과거의 사실로 묻혀 지고 닥쳐온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따라서 과거를 음미하고 미래의 희망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달 두달 세월이 흘러가고 남편의 슬픔도 차츰 냉철한 이성으로 감정을 초월하면서 생업에 정열과 노력을 쏟기 시작했으나 어려움은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봄이 되자 장사철이 시작되면서 사업이 활기를 띠우기 시작했습니다. 장사가 잘될 때는 외판원이 십여명씩이나 법석댔고 시동생은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외판원들이 외상으로 판매한 곤로 대금을 수금하러 나서야했으며 막 군에서 제대하여 돌아온 사촌시동생도 거들어 주었습니다.
저는 혼자 손에 이 많은 식구들 치다꺼리를 해주랴 남편의 시중을 들어주랴 가게 일을 보랴 금양 쓰러질 것 같은 고달픈 생활 속에 제 몸은 자꾸만 여위어 갔습니다.
주일날 성당에 나가면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제 손을 꼭잡아주며 위로해주셨습니다.
『어이구 착한사람 어디서 이런 사람이 생겼는가. 하느님도 감사하시지』
『감사하고말고.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어、하느님이 내셨지 하느님이 내시고말고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마르는가? 대근한가 보구먼、쯧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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