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TV에서 4角의 링을 들던 洪秀煥선수가 12회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敵地에서 네 번 쓰러지고 다섯 번을 일어나「챔피온을 먹던」때와는 너무도 달리, 그것도 서울에서 선수권을 내주고 말았다.
5개월 20일의 短命참피언에 대한 일반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그의 경기 포기를 나무랄 수만도 없었다. 초반에 이미 코피가 터지고「다운」을 빼앗긴데다 눈두덩이 찢겨져 계속 피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기는 무리였다.
앞으로 또다시 일어나 그가 세 번째로 세계정상을 차지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러나 이번의 패배는 한 권투선수의 퇴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하기야 어느 배우든지 등장이 있었으면 퇴장이 있게 마련인 것이고 우리는 모두 무대 위의 배우들인 것을…
洪선수의 퇴장을 지켜보면서 나는 불현듯 인간의 不可抗力이란 걸 느끼게 됐다.
洪선수는 이번 시합에서 이겼더라도 언젠가는 링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고, 이 사실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5월, 나는 소년 쩍부터「글친구」이던 K의 죽음을 봤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시내버스의 뒷꽁무니에 부딪쳐서 뇌가 파열됐던 것이다.
30대 초반에 未亡人이된 부인과 젖먹이까지의 다섯 遺子女들이 더없이 측은하게 여겨져 1주기 날에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찾아가기로 약속을 해두었다.
그랬는데 나는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그날 다른 장례식에 참석해야만했다.
『숙모님이 돌아가셨어요. 세워둔 빈 택시에 아이들이 올라가 장난을 하는 바람에 택시가 비탈길을 구르게 됐고 그 앞을 지나가시던 숙모님이 바퀴에 깔려서 그만…』
이런 전화를 받고 장지에 달려갔더니 열세 살짜리 외아들은 하관에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운 흙을 관뚜껑에 부으면서
『어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하직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이 철없는 아이로부터 어머니를 앗아간 교통사고-. 그리고 1년전 내친구의 죽음-.
이런 것은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지난 10년여 동안에 가까운 이웃사람이 白血病으로 숨지는 것을 봤다.
중학교동창 A가 대학을 나왔을 무렵에 갔고 TV탤런트 J가 그 병으로 갔으며 방송국직원 L도 그렇게 갔다. 최선을 다한 현대의학으로도 그들을 더 이상 세상에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최근에 나는 혈전증으로 요양 중인 원로작가 崔要安 선생으로 부터 비교적 長文의 편지한통을 받았다. 무거운 외투를 입구 작가실에 드나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더니 또 신록의 5월이 왔다면서 이렇게 썼다.
『手足이 마비되고 步行이 여의치 않고 뇌활동에 지장이 있어 겨우 연재중인 두개의 잡지원고만을 쓰는 것이 고작입니다. 의사는 원고 집필은 절대 금했지만 연재를 중단해서 잡지사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또 生과 死는 하늘에 달려있으니 살려고 애쓴다고 살 것도 아니 길래 쓰려져도 좋다는 각오로 썼읍니다』
그는 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담배를 줄여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간 朱泰益씨와 詩人 木月이 삭풍에 진 꽃과 같이 가벼렸는데 人生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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