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남편대로 마찬가지였습니다.
외딴 산골에서 조용히만 살다가 장사에 신경 쓰고 사람한테 시달리며 하루하루 보내기가 힘이 들고 피곤해서 오후쯤 되면
『후유 후유-』
하며 애를 못 삭이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육체적인 고달픔보다 정신적인 괴로움이 더 큰 것이었습니다.
『에이 빌어먹을 정찰판매 같은 장사는 없나?』
『이런, 시골에서 정찰판매가 돼요 어디…』
『사람을 도무지 믿어줘야 말이지. 이건마치 장사꾼을 도둑놈 취급을 하니 이거야원 속이 상해서 해먹을 수가 있어야지』
『그 사람들 나무랄 거 없어요. 누구든지 물건을 속지 않고 살려는 욕심은 다 마찬가지 아녜요?』
『아니 그럼 우리가 물건을 속여서 팔고 있다는 거야?』
남편은 죄 없는 저에게 역정을 내기도 하였으나 남편이 넋두리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고치식한 남편은 장사 수완도 없을 뿐 아니라 성격이 맞지 않는데다 어쩌다 곤로를 사러온 손님이 오면 주인의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고 실컷 말만 시켜놓고 사지도 않고 그냥 홱 돌아서 가버리는 데는 맥이 빠질 지경이었으니까요.
『율리아, 우리 장사 그만두고 다시 골짝집으로 들어가지 정말 못 견디겠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 아무래도 장사하다가는 내 건강이 지탱을 못할 것 같아 굶더라도 조용한 골짝집으로 다시 가잔 말야』
『여보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환경에 맞게 적응력을 기르셔야죠. 골짝집에 가서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거예요』
『그럼 당신은 내 건강보다 돈이 더 중요하단 말야? 내 건강 나빠지면 돈이 무슨 소용있어.』
사실 남편의 말이 옳았습니다. 저에게 남편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남편에게 다시는 꽁보리밥을 먹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 푼이라도 벌어 남편의 건강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가난만은 면해보겠다고 결심했으며 그러기위해서는 돈을 벌어야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토록 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애를 쓰던 남편도 역시 돈을 벌어야한다는 절박한 현실 앞에 차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장사에 애착을 느껴주며 열심히 일을 해갔습니다.
『율리아, 이것 봐 내가 돈을 벌었어. 내가』
골짝집에서 살 때 늘
『내가 휠체어에 앉아서 단돈 백원벌이만 해도 좋겠어.』하며 안타가와하던 남편은 곤로수리를 해주고 받아들은 지폐를 자랑스럽게 흔들어 보이며 이제는 당신이 손수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휠체어에 앉아서 새까만 기름때를 온통 손에 묻히고 곤로수리를 하고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은 아파왔습니다.
그것도 휠체어에 앉아서 할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으나 급하게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자리에 누워 있다가도 한 푼이라도 벌을 욕심으로 남편은 등 뒤에 베개를 고이고 비스듬히 일어나 앉아 수리를 해주고 있는 모습은 더욱더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 어떤 고통이나 괴로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자기 손으로 고쳐냈다는 희열과 돈을 벌었다는 기쁨으로 항상 만족해했고 무엇보다 이제는 완전히 환경에 적응을 하여 하나의 성실한 생활인이 되어가고 있는 남편이 대견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남편은 머리가 좋은 편인지 한번도 그런 일은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나 곤로수리를 잘도 해냈습니다.
누가 한번만 가르쳐주면 그다음부터는 혼자서 척척 고쳐내고 있었으며 그것도 기술업이라고 수리를 해주고 받는 이익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저는 이른 아침부터 부엌으로 방으로 또 가게로 혼자서 이리저리 동당대다가 점심때가 되어 남편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가게에 나가 돈통을 열어 보았더니 이제 어찌된 일입니까….
돈통 속에 넣어두었던 돈이 모조리 없어지고 돈통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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