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옆집에서 스물여섯 살 된 딸아이를 시집보내는 날이었다.
웨딩마치가 성당에 울려 퍼지자 옆집 딸이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친딸이 시집가는 것처럼 콧등이 찡-하더니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딸을 시집보내는 오늘 같은 날이 엄마로서는 딸을 키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영광스럽고 기쁜 날이리라…
나도 언젠가는 내 아들딸들의 영광스런 날들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 속에서 나의 지난날들의 아픔들이 새삼스레 망막을 스쳐 간다.
올해로 SOS어린이마을에서 내가 생활을 해온지 15년.
나는 얼마동안 생활을 해오다가 6개월 된 사내아이를 받아서 난생 처음으로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데는 숱한 어려움이 따랐지만 그것은 다만 더한 기쁨을 만들어주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키울수록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랑스런 어린 아기를 내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가끔 아기가 아플 때는 혹시 어디에 탈이 났는가하여 아기의 똥검사를 하기 위해 더러운 줄도 모르고 똥 맛까지도 보곤 하였다. 이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이 아이는 내 모든 것을 다주어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의 친엄마가 나타나서 아기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 얼마나 충격이 컷 던지 지금도 그 순간을 회상할 때던 가슴이 뛰고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이 눈에 선하게 떠올라 목이 메어지곤 한다.
그 아이를 제 친엄마가 데려간 후 나는 곧 3살 된 아이와 이 아이의 5남매 그리고 다른 3형제를 키우게 되었다.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정을 쏟으며 따사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어 큰애들은 중‧고등학교에, 제일 작은 막내둥이는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다니고 있을 무렵의 어느 날 5남매의 부모가 나타나서 나는 또다시 아이들과 헤어지는 슬픔을 겪어야만했다.
사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이들이 자기의 친부모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라 생각은하면서도 미운 정, 고운 정 다쏟아가며 키워온 아이들과의 이별은 마치내 생명을 앗아가는 것만큼이나 아프고 괴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이기심을 이기려고 무던히도 나 자신과 싸워야했다.
5남매가 한꺼번에 떠나간 후 나는 나 혼자가 되어버린 그 외로움 때문인지 심한 병을 앓게 되었다. 그때 나는 병과 외로움 때문에 엄마노릇을 포기하려고 마음을 먹었었지만 남은 삼형제의 아이들이 또다시 엄마를 잃게 되는 설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아픈 몸으로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차차 몸도 조금씩 회복됐고 새로운 두 형제를 맡아 같이 키우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 형제 중 큰아이는 고등학교 그리고 둘째아이는 중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그해도 다 지나고 그 이듬해 여름, 불행은 또다시 찾아왔다. 3형제 중 가운데 남자아이가 가까운 강변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은 것이다. 죽은 아이에 대한 나의 슬픔은 아이들을 자기부모에게 돌려주는 고통보다 몇 배 더 심한 것이었다.
평소 그 아이에게 좀 더 잘해주고 그 애가 하고 싶어 하던 것을 다 못해준 것이 한없이 뉘우쳐지고 가슴에 맺혔다.
그이후로 나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에게 깊은 정을 주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얼마나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다짐은 아이들을 대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기가 일쑤였다.
지금은 9남매의 엄마로서 그들보다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있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내 자신.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막내둥이 똑똑이가 매일 아침 자기보다도 큰 것 같은 가방을 울러메고 인사하며 학교로 가는 모습이나 방과 후 집에 돌아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샅샅이 얘기해 주곤하는 사랑스러운 작은 딸에, 그리고 중학교 3학년으로 자기학급에서 일등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큰딸을 지켜보노라면 아이들이 그토록 기특하고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지금은 행복스럽고 평화스럽기 만한 우리가정…
멀지 않은 장래에 내 아들딸들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떳떳이 시집 장가가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니 새로운 희망과 기쁨이 마음 깊숙이서 용솟음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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