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순간 저는 마치 뒷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온몸에 맥이 쑥빠져 그저 멍하니 서있기만 했읍니다.
『괜찮아 율리아, 너무 속상해 하지마.』
『그렇지만 그게 어떻게 벌은 돈인데요』
『우리는 또 벌면 되지 않아. 우리 깨끗이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가집시다.』
『미안해요 여보, 제가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무슨 소리야? 왜 당신이 잘못해 액땜을 했다고 생각해. 잃어버린 우리는 살 수 있어도 그돈 가져간 놈은 편히 못사는 법이야. 자 우리 웃읍시다. 웃어요.』
남편은 제손을 잡아주는 시종 위로를 해주 있었으나 저는 여자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돈이 아깝고 속이상해서 저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렸읍니다.
참으로 기가 막혔읍니다. 우리는 돈을 벌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왔으며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생활 속에 또 얼마나 많은 불편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던가?
골짝집에 가게로 나올 때 솥ㆍ단지하나 냄비 한개 그리고 그릇 몇 개와 수저 몇 개가 전부인 부엌살림을 가지고 살림을 시작했읍니다. 밥상을 차릴 때마다 불편을 겪어야했고 처음 몇 달은 밥상마저 없어 쟁반에 상을 차려 돈 통 위에 올려놓고 밥을 먹을 때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부끄럽기가 짝이 없었읍니다.
『율리아 우리 조금씩 참고 견딥시다. 지금 우리가 돈을 번다고 하나, 백 원 한장을 쓸 때도 이것이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돼요』
남편은 제가 겪고 있는 불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터라 당신마음도 편할 리 없건마는 착실하게 장사하고 한 푼이라도 절약해서 하루빨리 빚을 갚고 안정된 생활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항상 이런 말을 들려주며 초긴축정책을 쓰는 남편에게 저는 조금도 불평이나 짜증을 낼 수가 없었읍니다. 한 번도 말쌀을 사다 먹어보지 못하고 매일같이 되박쌀 사나르기에 바빴고 점심때는 국수나 라면을 삶아 내는 게 저의 일과 였읍니다.
어찌 이 뿐이 겠읍니까? 홀로계시는 시아버님께 용돈 한번 제대로 드려보지 못하고 골짝집에서 제 대신 살림을 하고 있는 동서에게도 생활비 한번 제대로 줘본 일이 없어 동서의 고생 또한 컸으나 마음씨 고운 동서는 모든 것을 잘도 참아 주었읍니다.
이처럼 기막히게 생활하면서 벌은 돈인데 매정하게도 돈을 훔쳐가다니….
너무도 얄미워서 저는 며칠을 두고 속이 상했읍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한일에만 정신을 집착하거나 마냥 감상에만 젖어 있을 수는 없어 다시금 저의 생활에 열중했읍니다.
무슨 일이나 체념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만큼 생활이나 건강을위해서 좋은 법이니까요.
석유곤로는 여름철이 성수기여서 제철을 만나 장사는 잘되어갔으나 저는 늘 남편의 건강에대한걱정이 제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읍니다.
골짝집에서 살 때는 그래도 탁구공을 치는 운동이나마 열심히 할 수 있었지만 가게로 나온 후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운동을 해보지 못했고 더구나 남편은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거리에 나서기를 꺼려하여 거의 방에서만 살다 시피하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우연히 남편에게는 생활에 큰 변화가 왔읍니다.
저녁을 먹고 앉아있는데 남편의 친구 분들이 와서 덥고 답답하니 바람이나 쏘이러 나가자고 반강제로 남편의 휠체어를 거리로 밀어 부친 것입니다.
마침 지나는 길이 탁구장 옆길이었고 친구를 권유에 못 이겨 탁구장에 들어간 남편은 오랜 시간 탁구를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그이는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고 왔다는 사실이 도무지 현실같이 느껴지는 않는 듯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를 주고 받았읍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운동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다는 남편이고 보면 처음으로 탁구대에서 탁구를 쳤다는 것이 그토록 신기하기만 했던 모양이었으며 아마 처마 밑에 매어달아 놓은 탁구공을 쳐본 것이 남편에게는 큰 덕이 되었었나 봅니다.
그 뒤로 남편은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저녁만 되면 탁구장으로 달려가 탁구를 치고 들어 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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