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 할때나 스스로 결단하고 행동에 옮겨야 할때 항상 우리를 가로막고 나서는 일이 있다.
내가 이러면 아버님께서 대발노발하시지 않을까?
어머님이 언짢게 여기시지나 않을까?
아내가 잔소리깨나 늘어놓으며 나를 못살게 굴지나 않을까?
우리가문에 손상을 입힌다고 집안어른들이 법석을 떨지나 않을까?
친구들이 불평이나 하지 않을까?
이렇듯 늘 망설임부터 앞선다.
요즈음 자율적인 인간의 행동이니 결단할 줄 아는 인간이니 자유인이니 하며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실상우리는 핏줄이나 그 어떤 집단체에 꽁꽁 묶이어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더욱 골란한 것은 핏줄에 묶이어 산다는 것을 옛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활신조요 미덕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의 가족중심의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내가 탓하고 싶은 것은 그 제도에 임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이다. 제도 자체가 우리를 얽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가 그 제도에 매달려 그 속에 파묻혀 살려고만 한다. 이것은 당당한 개인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집단체에 예속된 한사람으로 존재하여 자신을 포기하려는 잠재의식이다.
이러한 잠재의식은 여자일수록 더 강한것 같다. 결혼 전의 여자들은 공부가 하기 싫거나 스스로 결단하고 책임을 져야할 어려움에 부딪치면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가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고 자신의 패배를 이렇게 합리화한다.
어차피 나는 여자니까…
결혼하면 그만이니까…
그녀들은 자기포기가 여자의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여긴다.
집단체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다. 스스로 문명을 선택하여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고、어떤 인간이 되기 위해 결단하여 행동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유를 거부하는 것이란 말이다.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자아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자아란 자유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거부하고 자아를 포기하여 個人性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잃어버릴 때 우리는 <나>가 아니라 누구일수도 있는 비개성의 인간 비본래성의 인간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물체에로 전락하게 된다.
대부분의 여성이 김씨네 아내일수도 있고 박씨네 아내일수도 있고 철이의 어머니일수도 있고 순이의 어머니일수도 있는 개성 없는 여자로 습관에 따라 밥 짓고 빨래하고 먹고 자는 타성화 된 日常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한가정은 공동체가 아니라 집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는 비개인적인 집단체의 한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단하고 행동하고 만사에 책임을 질 줄을 아는 주체 있는 인간으로 가정에 임해야하겠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한 가정에 꽁꽁 묶인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자유인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가정은 한낱 집단체가 아니라 건전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자유인의 자격으로 공동체 속에 살아갈 때 하찮은 것 같던 가정살림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되며 누구와도 바꿀 수없는 <나>만이 아내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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