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먹어리인 내가 77년 3월 5일 노틀담 수녀원에서 아가다란 본명으로 영서성사를 받기까지엔 눈물겹도록 고마운 여러 수녀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다.
귀가 멀어 단절된 소리의 소외감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비관하고 학대하며 열등의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고집이 세고 무슨 일이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마구 신경질을 부렸다. 올해로 내 나이 스물네살. 소중한 청력을 잃어 버린지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나보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는 남이 내게 조금만 잘 대해주면 어쩔 줄 모르게 좋아하고 남이 내게 조금 언잖은 기색이면 남들과 차별하는 것만 같아 남몰래 울기도 많이 했었다.
여공으로 지내던 어느 날 공장에 수녀님 두 분이 찾아와 퇴근하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노틀담 수녀원에 양재를 배우러 오라고 하셨다.
첫날 호기심으로 놀러 갔다가 공짜로 양재기술 배워 준다하니 한번 배워보자는 마음이 생겨 수녀원에 드나들게 되었다. 나는 귀가 멀어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주시며 양재수업 때 듣지 못하니까 일일이 따로 메모해서 가르쳐주시고 내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셨다. 직장을 쉬는 날 수녀원에 놀러오라고 초대해서 우리집안의 가난한 처지와 찾을 수 없는 내 청력에 안타까운 마음과 눈길을 보내주셨다.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아나가야 한다고 삶에 대한 자신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셨다. 항상 청결한 수녀복 속에 언제나 밝은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값싼 동정이 아닌 마음의 아픔을 함께 가져주시는 수녀님들을 자주대하니 내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수녀님들의 생활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수녀님들의 존경과 좀 더 수녀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던 날 수녀님께 나도 성당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고백하고 말았다. 수녀님께서 기뻐하시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성당의 교리반에 들어가 교리를 배우려면 힘들겠다고 우선 통신교리를 받아보도록 하고 수녀님께서 시간나는 대로 교리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집안에는 아무도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없고 어머님은 불교신자여서 부모님께는 아무말씀도 드리지 않고 수녀원에서 수녀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교리를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언제 좋은 기회를 봐서 어머님께 성당에 다니겠다고 허락받으리라고 마음먹었는데 통신교리책이 집에 오면 꼭 받아 두었다가 전해 주시고 어머님께서는 내가 성당에 다니는 것에 아무 말씀 없이 묵인해주셨다. 노틀담 수녀원 성당에서 수녀님들의 축복 속에 세례 받던 그날 떨려오는 몸과 마음 이제 다시 태어났으니 주님의 뜻대로 새롭게 살아야지…
세례주신 배문한 신부님의 주선으로 서대신동본당 신부님께 소개되어 서대신동성당에 다니면서 나는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마음으로 성가를 부르며 마음으로 신부님의 모든 말씀을 듣는다.
주님은 내게 크나큰 사랑과 은총을 내리시어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주셨다. 세례 받은 그날 겨울 성탄절을 보름 앞두고 서대신동 성당에서 신부님의 양해 아래 그이랑 관면 혼배식을 올리고 성탄 하루 전날 남편의 영세식이 있었다. 프린치스꼬 사베리오라는 본명을 받은남편과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에 우린 지금 행복하다.
이제 소리의 빛 대신에 마음의 빛을 내려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참된 인생을 살 것을 다짐해본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