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남편이 운동을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그리고 자나 깨나 얼굴을 맞대고 살아오던 단조로운 생활에서 잠시나마 떨어졌다 만나는 기쁨도 있었으나 그 대신 저는 매일 밤 꾸벅꾸벅 졸면서 가게를 보아야 했읍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읍니다. 탁구를 치러 다니면서부터 남편은 차츰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데 조금씩 익숙해져갔고 휠체어를 타고거리를 지나면서 주위의 집중되는 뭇시선들에 조금은 면역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마는 어쩌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꼬마가『엄마 엄마, 저것 봐』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신기한 듯 쳐다볼 때면 낯이 뜨거워 고개를 쳐들 수가 없다는 남편은 집에 들어 오면 천정만 멍하니 주시하며 우울해 했읍니다.
『여보 용기를 내세요.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방에서만 살아갈 수없는 것 아녜요』
『아니 내가 뭐 동물원의 원숭이나 되느냐 말야? 그렇게 쳐다볼게 뭐있어.』
『그 사람들 당신같이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은 보지 못해서 그래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 도무지 창피해서 다닐 수가 있어야지. 내가 어쩌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여보 왜 그러세요、당신답지 않게、모든 게 운명 아녜요. 참고 견디세요. 당신 곁에는 제가 이렇게 있지 않아요.』
남편은 건강한 사람들 틈에서 불구자이기 때문에 받아야하는 고뇌와 번민을 피부로 느끼며 불구자의 비애를 짓씹기라고 하는 듯 몹시 괴로워하며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가 허공에 『후-』하고 뿜어 대었읍니다.
병들었거나 가난하거나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눈길로 감싸주며 진정한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여 줌으로서 밝고 명랑한 사회、서로 신뢰하고 믿음 받는 사회가 이룩되어 불구자도 가난하고 병든 자도 좀 더 떳떳하고 밝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
저는 남편의 괴로움을 옆에서 지켜보며 행여나 그이의 정신적 자세에 배타적이고 도전적인 이상심리(異常心理)가 형성 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을 해보기도 하였으나 다행히도 남편은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당신의 지성과용기로 점점 주위환경에 자신을 적응해갔고 극도의 자제심으로 조금도 몸과 마음에 흐트러짐이 없이 잘 참고 견디어 냈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우리는 가슴이 쓰리고 아픈 일을 당해야만 했읍니다.
그날도 잠에서 깨어난 남편을 휠체어에 앉혀주려고 이불을 걷고 바지를 입혀 주려다 저는 그만 차마볼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읍니다.
어찌된 일인지 남편의 발가락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요와 이불이 피로 얼룩져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가슴과 손이 마구 떨려 이불을 걷어 제쳐 놓고 바지만 손에 쥔 채 남편의 발가락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율리아, 왜 그래 빨리 입히지 않고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여보 이게 어찌된 일예요』
『뭐가?』
『당신 발가락에 온통 피가…』
『뭣이』
제 입에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상체를 일으킨 남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발가락을 내려다본 후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얼이 빠져 있었읍니다.
『여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예요』
『……』
『어제 저녁에는 아무렇지도 안았는데 밤새 이게 무슨이예요.』
『참 세상에 이럴수가 있나, 내가 군병원에 있을 때 그랬었다는 소문은 들어봤어도 내가 직접 당할 줄이야…』
『무슨 말씀이세요、그게』
『위생병한테 들은 얘기야. 그 사람도 척추마비환자인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쥐가 발뒷꿈치를 마구 갉아먹었더라는 거야. 그때는 그냥 그럴수도 있을까하고 남의 얘기로 들어 넘기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내 얘기로 들어 넘기고 말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내 얘기가 되었으니』
『아니 여보、그럼 쥐가 당신을…』
저는 남편의 발가락에 유혈이 낭자한 이유를 알고 난 후 다시한번 모서리를 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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