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바뀌는 가운데 인간의 의식마저 생화구조와 함께 많이 바뀌는 것 같다. 생활의 현대화와 더불어 인간의 감정도, 의식구조도 차츰 현대화되어 과학적인 인간형이 개개인의 심리내부에 구조화내지 생리화 되어가는 듯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인간에만 집착하는 사랑만을 하지 말고 인간을 지탱하는 생명을 소중히 할 줄 알고 생명의 근원이 하느님 앞에 이웃의 생명을 내 것과 함께 정립시킬 줄 아는 양심적인 진실한 사랑이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여기 질그릇이 하나 있다. 현실적으로 보다면 아주 볼품없고 윤기 없는 질그릇이다.
스텐그릇, 유리그릇, 고급사기그릇 등이 활기 치는 요즈음, 이 질그릇은 시골담 모퉁이에 버려진 채 흙과 빗물이 고여 딩굴고 있다.
누가 버렸는가? 바로 나일수도 있고 당신일수도 있고 현대에 사는 모두 일수도 있다.
옛날 가난한 우리선조들이 이 질그릇에 담아먹던 오곡밥맛을 아는가?
논밭에서 일손을 쉬며 목을 축이던, 이 질그릇에 따루어진 컬컬한 농주의 맛을 알 수 있는가?
또한 새벽같이 오십릿 길을 재 넘어 장보러 가신 오라비를 위해 방 아랫목 질화로 위에 올려놓은 구수한 된장 내음의 정취를 알 수 있는가?
이처럼 토속적인 조상의 얼이 담긴 그릇일수도 있고 예수께서 「사마리아」여인에게서 받아 드셨던「야곱」우물가의 물그릇일수도 있고 최우의 만찬에서 주님의 살로 떡을 베시던 그릇일수도 있는 이 질그릇이 가진 정취를 뉘 감히 들밭에 던지겠는가?
이 버려진 질그릇, 고귀한 정서를 담은 이향 내나는 질그릇을 그 누가 버렸는가?
아니,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버렸다고 변명할 필요는 없다.
한국가의 발전이 역사의 흐름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교회도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과 함께 사도로부터 유일하고 공번되게 이어져서 오늘의 우리영혼에까지 심어져왔거늘, 어찌 현실에만 눈을 두고 역사는 외면할 수가 있는가.
또한 역사란 한과거로서 끝나는 것이 아닌, 살아서 움직이며, 이래의 날을 향하여 세계의 시간과 사건 속에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활동과 함께 쉼 없이 활동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영혼에 생명의 말씀을 심기까지는 수많은 고난과 박해와 투쟁이 얼룩진 그리스도의 역사를 안다면 이 질그릇의 조그마한 언어보다 더 절실한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좋은 그릇에 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무엇을 담아야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고 배워온 우리가 내적인 것보다 외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의식구조가 후세들에게 진리를 고착된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지워져야 되는가?
바로 나와 당신과 이 세대를 사는 우리들의 공동책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개개인은 나약한 인간으로서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생활권 안에서 자신을 살피기 위해 이 소극성을 탈피하기 힘든다.
다만 자신을 이웃과 같이 자리한 객관적인 위치에서 살핀다면 이질그릇은 바로 나나 당신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그릇보다 이 볼품없는 질그릇에 보화를 담아주시는 (꼬후4ㆍ7~15)하느님의 능력을 바로 안다. 먼 오히려 우리는 질그릇 됨을 기쁘게 여길 것이다. 겉만 닦아 윤이 나는 그릇보다는 속이 잘 닦여 충실한 질그릇을 아낄 줄 아는 참된 생활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살찌우고 아울러 삶 자체를 윤택하게 할 것이다.
하룻동안 우리에게 부여된 모든 것들에 좀 더 충실했는가를 반성하면서 이 조그마한 질그릇에 채워주시는 보화에 감사하면서 내 이웃과 나눠가지는 겸손한 생활, 애덕의 실천으로 이웃에도 하느님 사랑을 심는 소박한 질그릇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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