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섭해서 어떡하나 그동안 정들었었는데…그러나 베드로가 내 집에 와서 돈벌어 집짓고 나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좋구먼. 구멍가게를 볼거라지? 서로 불쌍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해서 행복하게 잘살게』
자식을 대학까지 공부시켜 모두들 성공시켜놓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큰아들 배선생 내외와 비교적 부유한 생활에 별다른 걱정이 없이 단란하고 오붓하게 여생을 보내며 살고 있는 배선생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와의 헤어짐을 못내 아쉬워하며 부디 행복하게 잘살라고 당부까지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분들었읍니다.
같은 교우의 입장에서 남달리 가지는 정도 있었겠지만 같이 사는 일년동안 장사한다고 깨끗한 집안을 온통 어지럽히고 밤늦도록 떠들고 법석을 부려도 그저 우리가 돈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고 돌보아주고 보살펴주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신 고마운 분들이었읍니다.
그날 저녁 새로 이사 온 집은 온 마을사람들이 다와 주기라도 한 듯 그야말로 축제의 날 같았읍니다.
『이 사람아. 아 좋은날 어머니랑 시누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들하셨겠나』
『누가 아니래 그렇게도 아들걱정 동생걱정을 하시더니만 이런 모습을 못보고 돌아가셨으니 어지간히 복들도 없으신 분들이지』
『그러나 저러나 골짝집서 고생도 많이 하더니 이렇게 돈 벌어 집진걸보니 남이라도 이처럼 기쁠 수가 없네 그려』
성냥과 양초를 사들고 온 동네 사람들은 저희들이 돈 벌어 사는 모습을 못보고 세상을 떠난 시어머님과 시누이에 대하여 마음 한구석으로 가엽게 생각하면서 모두가 한결 같이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해주셨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잣집 한쪽에 붙어있는 창고만도 못한 집을 지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 일까마는 무척이나 고생도 하고 살던 사람들이 그 고생을 극복하고 삶과 행복의 터전이 되는 집까지 마련했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 눈에는 퍽으나 대견스러웠던 모양이었읍니다.
그날 밤 늦도록 방안으로 가득히 모여앉아 한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후 우리는 마치 휘몰아치는 거센 소나기를 피하여 아늑한 동굴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으로 우리의 새 보금자리에서 이사 첫 밤을 맞이했읍니다.
저는 오랜만에 안정된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자리에 누워 방안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습니다. 도배지의 갖가지 무늬와 색상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된 것 같으면서도 짜임새 있게 잘 조화를 이룬 방안은 한층 아름다와 보였으며 새색시처럼 그 어떤 만족감에 도취되어 마음이 들뜬 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살며시 미소를 지었읍니다.
『왜 그래 율리아. 왜 웃는 거지?』
『아녀요 아무것도…그냥 웃음이 나와서 그래요』
『뭐라구? 그냥 웃음이 나오는게 어딨어. 혹시 당신 새집 짓고 이사오더니 흥분하고 있는 거아냐?』
『예 맞았어요. 저 지금 몹시 흥분하고 있어요. 도무지 이석이 우리 집이라는 실감이 나지않고 어느 궁전에 누워있는 기분같아요.』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내 집이 좋은 줄은 정말 몰랐어, 어렸을 때 어머니의 품속에 안겨있는 것 같이 오늘처럼 몸과 마음이 편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애.』
『그러기에 오두막이라도 내 집이 좋다는 게 아녜요』
『옳은 얘기야, 그동안 율리아 고생 많았어. 오늘이 있기까지 당신이 잘 참고 견디어 열심히 살아준 덕이요.』
『당신도 참, 이게 왜 저 혼자만의 덕이예요? 당신도 사동생도 다 같이 고생하고 노력한 보람이지요.』
그날 밤 저도 남편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는 맘이 깊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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