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성빈센트 병원에 입원해있을 때였다.
미사참례를 하려고 병원 삼층으로 올라가니 조그마한 성당에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소원」지를 발행해서 전국 가톨릭 병원마다. 배부하시는 공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고 계셨다.
이 작은 성당의 미사 때 모이는 신자 수는 30명정도인데 일요일이 아닌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미사에는 15명 내지 20명 정도일 때가 많았다.
병원성당이고 보니 간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환자뿐인데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골고 타 언덕에서 피 흘리는 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교통사고로 침대차에 누워 일요일마다 새벽미사에 참여하시는 신부님도 계시고 천리 타국 이국에 와서 고혈압으로 고생하시는 아일랜드 수사님의 쓸쓸한 모습도 볼 수 있고 신경마비로 다리를 못 써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베이비 차에 실려 오는 대학생도 있고…기브스 다리를 들고 엄마의 손에 끌려 휠체어를 타고 오는 꼬마손님도 있는가 하면 손등에 주사바늘을 꼽고 약병을 든 채 구석자리만 찾는 수줍은 청년도 보여 성당이란 곳은 참으로 죽어가는 어린생명을 안고 고뇌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함께 믿음과 소망과 기원으로 바치는 제단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어 손과 얼굴을 가리고 바퀴의자에 앉은 채 얼굴만 내놓은 성가를 부르고 성체를 모시고 기도했다.
내 본연의 자세대로 미사참여를 하고보니 가장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했다는 자부심때문인지 예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알 수 없는 힘과 용기가 생겨 성체께 대한 신심이 날로 새로와지고 마음이 평화도 업어 나는 자주 미사참례를 하고 성체조배를 할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나면 담당간호원이 오기도 전에 자기 환자를 세워놓고 다른 환자를 병실까지 데려다주는 친절도 이곳에서 보았고 고향에서 부모님이 가져오셨다며 따끈한 찹쌀떡을 나누어주는 훈훈한 인정도 이곳에서 보았기에 내가 머물고 있던 한 달 동안의 병원생활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고 협조하는 사랑의 불빛이 되어 오고가는 인사는 만날 적마다 찬미와 감사뿐이였다.
지난 성탄 때는 아기예수님께 예물을 드린 한 바오로씨가 미사가 끝난 뒤 가까이 왔다.
바오로씨가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어찌나 성격이 명랑하고 유머가 풍부한 지 만나는 사람마다 쉽게 대회를 나눌 수 있고 병원에서 오랫동안 입원을 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2년 전 전기회사 직원으로서 높은 전신주에서 일하다 떨어져 척추를 다쳤는데 하반신이 마비되어 그만 퇴원하고 싶어도 집에서 젊은 아내가 4남매를 데리고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어 간호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인지라 계속 병원에 머물고 있는 분이였다.
『루치아씨 아기예수님께 얼마나 드렸어요. 나는 오늘 같은 날 예수님께서 홀로 감실 안에서 쓸쓸해 하실까봐 술이나 사 잡수시라고 막걸리 두되 값 드렸어요.』
『어쩐지 예수님 얼굴이 붉게 빛나시더군요. 벌써 술취하셨나봅니다.』
성체볼 반짝이는 제대 앞에서 나는 크리스마스 츄리를 발보며 미사참예를 하고 나오는 환우들과 함께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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