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을 보면 온 인류가 한 가지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돌아다니다가 평야에 자리 잡고 탑을 높이 쌓아서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려고 하였다.
하느님은 이 무모한 짓을 보고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의사가 통하지 않아 중단되어 도처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 탑을 「바벨」이라고 했는데 「혼란」의 뜻이라고 한다.
그 탑이 아직도 유물로 있어 관광은 하지만 그 뜻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 아닌가 한다. 바로 오늘의 혼란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모두 하느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기의 이름만 떨치려고 교만하니 말이다. 즉 우리가 8ㆍ15이후 평화의 탑을 세웠으면 벌써 하늘가지 닿았을 것이지만 북한은 물질의 탑을 쌓고 우리는 황금의 탑을 쌓으니 분열과 혼란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해방으로 평화를 찾게 된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한마음을 품고 산데 기이한 것이며 오늘의 분열은 하느님을 거역한데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이다. 8ㆍ15가 되니까「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눈물을 흘리면서 목이 터지도록 불렀는데 이에 북한은 하느님은 추방되고 십자가는 땅속에 묻혔으며 우리는 그를 믿는 자는 20세기 낙오자로 조소의 대상이 되고 황금이 하느님이고 힘이 구세주로 등장하고 있는 감이 농후하니 말이다. 여하간 키워주신 부모님을 학대하고 복되게 살수 없다면 우리를 돌보시고 계시는 하느님을 거역하고 어떻게 살 수 있으며 뜻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즉 토지를 주어 생계를 마련해준 지주를 추방하는 자나 호화주택을 지어주고 생산품을 만들어준 노동자를 천사하는 자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것이니 그들이 쌓고자하는 탑을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벨탑이니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으므로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게 되는것이다. 만일 하느님의 뜻대로 토지를 분배하고 고용인에게 임금을 지불하는데 여기서 데모가 있고 파업이 있을 것인가?
세상에 도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댓가 없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도독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오늘의 발전을 위해 강변에 모래를 만드는데 수백년을 두고 귀한 생명과 재산을 희생시켜며 아니 주야로 쉬지도 않고 깨끗이 모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한데 그 모래를 가지고 거부가 된 자나 호화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하느님께 돌려드렸는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빈손을 들고 땀 흘려 마련한 농토를 자기 것이라는 자나 빈손 들고 나온 인생이 하느님의 것을 독차지하는 소행이나 같지 아니하겠는가?
그들이 하느님을 부인하는 것은 주인을 인정하면 일부를 반환해야 되므로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장님이 남의 지팡이를 가지고 제 것이라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하느님 외에 아는 이는 없다.
요는 우리가 쌓고 있는 오늘의 탑이 아물 하늘을 찔러도 하느님을 무시하면 제2의 바벨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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