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이루려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면 잠을 청할수록 지난 1년간이 고달팠던 갖가지 생활들이 캄캄한 망막위에 조명등처럼 밝게 확대되어 정신은 더욱 멀쩡해지고 잠은 멀리멀리 달아나버리곤 하였읍니다.
생각해보면 가난했기 때문에 겪어야했던 지긋지긋한 지난날들의 수많은 고통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받아야했던 뼈아픈 슬픔들 또한 강인한 여자가 되어야한다고 스스로 굳게 다짐하면서도 남편 몰래 남몰래 숨어서 흘린 눈물은 또 엄마였던가.
이 모든 것들을 다시는 맛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노력을 하였던가.
그릇 몇 개와 솥, 단지하나로 시작된 생활은 접시 한 개, 냄비하나를 살 때도 심한 마음의 부담을 느껴야했고 막 쌀 한번 팔아먹어보지 못하고 언제나 쌀가게주인의 눈빛을 살펴가며 조그만 봉지에 매일처럼 됫박쌀을 사나르며 밥상도 없이 돈 통을 밥상삼아 식사를 해야 했던 어지간히도 옹색했던 생활에 남편은 백원 한장도 이것이 내 돈이 아니라고 쓰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참고 견디며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고달픔 속에서 단하나 정신력으로 가냘푼 몸뚱아리를 지탱하며 오직 돈만을 벌기위하여 악착같이 살아온 일 년 세월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집을 지을 때는 불구된 형님대신 집짓는 일을 도맡아 매일매일 일군들과 뒷바라지를 혼자서 해야 했던 동서의 고달픔은 또 얼마였던가.
이것저것 생각하니 너무도 감개무량하고 그 모든 것들을 참고 이기며 열심히 노력한 보람있어 집까지 장만했다는 대견한 생각에 저는 잠을 못 이루고 이리뒤척 저리뒤척 대견한 생각에 저는 잠과 실갱이를 벌려야 했읍니다.
새집에서 우리의 새 생활은 시작되었읍니다.
당장 구멍가게를 시작한 것이 아니어서 얼마동안은 아무 하는 일없이 저는 시집오니 모처럼 만에 몸과 마음을 편안히 지낼 수가 있었읍니다.
그런데 그해 겨울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시누이의 일 년 상을 마치고나자 어느 날밤 한밤중에 잠에서 깬 남편은 갑자기 심한 구토를 하며 두 손으로 앞가슴을 틀어쥐고
『율리아 내가 갑자기 왜 이렇지? 속을 마구 깍아 내는 것 같다. 쓰리고 아파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 아이구 아이구…』하며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몸부림 쳐댔읍니다.
저는 그날 밤 『율리아 몇 시야 날이 샐려면은 아직 멀었어?』하면서 무척이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고통을 겪고 있는 남편과 더불어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읍니다.
어떤 일이나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한 것이지만 마치 시간이 빨리빨리 흘러가지 않는 것이 제 탓이라도 한 것처럼 민망하고 안타까왔으며 그 밤중에 누구를 깨우러 갈수도 없고 소리도 할 수 없어 저 혼자서 몸부림치는 남편을 붙들고 안절부절 해야만 했읍니다.
마침내 고통스럽고 지루했던 긴긴 어둠이 걷히고 먼동이 트기 시작하여 아침이 되자 저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향했읍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죽을힘을 다하여 빠른 걸음으로 휠체어를 밀어부티고 있었지만 남편은 거리를 지나면서도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상체를 이리저리 들어대며
『율리아 왜 이렇게 못 밀어 빨리 좀 밀어봐 답답해 죽겠네.』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발걸음을 재촉했읍니다.
병원에 가서 주사 한대 꾹 맞고 나면 금방 고통이 앗은 듯이 싹 가실 것 같은 성급한 남편의 생각에는 아무리 휠체어 바퀴가 빨리 굴러가도 굼벵이가 기어가는 것 같이 느끼고 답답할 따름이었나봅니다.
다행히 이른 아침인데도 아침잠에서 깨어난 원장선생님은 친절하게 진찰과 치료를 해주었읍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위경련입니다. 흔히 말하는 가슴앓이라는 병이지요. 우선 진통제 한 대 맞고 약 좀 먹으면 갈아 앉을 겁니다. 몸이 보통사람보다는 약할 테니 좀 약한 것을 놓아드리겠어요. 빨리 데리고 가서 자리에 눕혀 주세요.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을 거요.』
골짝 집에서 남편이 방광과 신장결석으로 오래고생을 하고 있을 때도 몇 번이나 그 먼 길까지 왕진을 해주시면서 치료비도 받지 않고
『듣자니 원호혜택도 못 받으시는 모양이던데. 부인께서 고생이 많으시겠읍니다.』하시며 오히려 위로까지 해주시고 가시던 고마운 분이었는데 그날도 이른 아침인데도 치료비 한 푼 받지 않고 역시 친절히 대해 주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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