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어떤 국제클럽이 주회하는 전국특수 어린이를 위한 예농대회에 백일장심사원이 일원으로 참석한일이 있었다.
만국기가 펄럭이는 대회장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그러나 대회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6백여명의 지체부진아와 정신박약아가 눈에 띄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하였고 다음순간은 숨이 막히는 아픔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삭가셔지기까지 하였다.
넓고 탁트인 공간이 오히려 갑갑하게 느껴지는지 머뭇거리기만 하는 귀머거리와 벙어리…환한 햇빛아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언잖아 휠체어 안에 몸을 움츠러트리는 소아마비이 어린이…기형적으로 성숙한 체구를 흔들어대며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정신박약아…
비참하게도 불행한 특수 어린이가 어찌 이리도 많을 수 있을까…
그런데 대회장에 모인 특수 어린이는 극소수고 전국엔 엄청난 수의 특수 어린이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어린이들의 불행은 누구의 책임일까…물론 그들을 낳은 부모 탓도 아니요. 어린이 자신의 탓도 아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쩐지 그것이 내 탓이고 우리어른의 탓인 것만 같아 그 죄책감에 어린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떨구었다. 울적하기만 했다.
돌연히 취주악기의 소리가 울렸다.
여기저기 응원석에서 응원기를 휘두르며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어린이를 인솔하고 온 보호자와 자진하여 따라온 마을 청년들의 응원가가 우렁차게 하늘위로 퍼지며 시무룩했던 어린이들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의 보호자와 청년응원단이 옳았다. 나도 미소로 적극적인 참여를 표시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선수입장을 알렸다. 얼굴에 광대를 그리고 알록달록한 즐거운 옷차림을 한 70ㆍ80객의 외국인 명사클럽회원들이 손에 장난감을 들고 선수어린이들과 장난을 치며 선두로 입장했다.
어린이들과 함께 놀아줄 줄 아는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지며 한편 가슴밑바닥에서 기쁨이 솟구쳤다.
그러나 축사차례가 되어 그 기쁨은 무참하게도 이지러지고 말았다.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없는 어른들의 판에 박은 듯한 문구의 나열…자신들이 특수 어린이를 위해 얼마나 기여했는가하는 장황한 자기자랑…20여명의 단상의 손님을 상대하는 듯한 내용의 말…무슨 기관장이니 회장이니 이사장이니 타이를 매고 정장한 으젓한 명사들의 축사는 끝이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햇빛은 뜨거웠다. 모자도 없이 맨머리를 들어낸 선수단 어린이들이 일사병에 걸려 하나 둘 땅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명사들의 축사는 끝없이 줄을 이어갔다.
내 가슴엔 분노 같은 것이 치밀었다. 어른 중심의 행사…행사를 위한 행사…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린 행사.
그러나 어린이들은 관대하고 참을성이 있었다. 장시간의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경연대회의 본론으로 들어가자 어린이들은 힘껏 뛰고 힘껏 그리고 힘껏 쓰며 다시 대회장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지기를 이해해주고 위해주고 삶의 용기를 주는 같은 또래의 어린이친구를 사랑하지만 「나의 원숭이 기택이」(자기를 보호해주는 어른)도 미워하지 않고 조금은 좋아한다는 특수 어린이들의 글귀를 대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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