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기를 역사는 되풀이한다고만 실은 똑같은 방법으로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역사가 되풀이하지 않는 한 역사가 우리에게 직접으로 유익한 학문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가 현실의 기원을 설명하고 현재를 이해시키는 한에서 간접적으로는 유익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무엇보다도 현재를 이해케 한다. 그런데 역사가들 중에는 현재를 이해하기위해 역사 전체를 연구할 필요가 없고 다만 현대사를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에는 문제가 없지 않아 있다. 現代가 오늘의 기원인 것과 마찬가지 이론에서 近世의 기원은 中世이고 中世의 기원은 古代가 되어야할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현재의 보다 깊은 근원을 古代에서 찾아야할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現代史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천주교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現代史를 통해 비로소 현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이 의견은 우리에게 대한 큰 경고가 아닐 수 없다.
현대사의 存在理由가 있는가. 現代史와 最近世祀와는 무엇이 다른가. 등등 이에 관해 史家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 긴하나 중요한 것은 낱말자체가 아니라 낱말이 의미하는데에 있다.
환언하면 現代라고 할 때 낱말이야 어쨌든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를 연구하여 거기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던 우리에게 있어서 현대란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해당되는 것일까. 이 시기를 學界에서는 일반적으로 해방직후로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寒國史의 時期區分이 반드시 교회사에도 해당된다고 말할 수도 없겠으나 이 시기에 있어서 敎誨師와 寒國史와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점에서 교회사에서도 해방직후 시기를 現代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민족의 해방 이래 同族相殘의 6ㆍ25는 민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도 가장 크고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동란이 바로 無神論的 공산주의와의 대결이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교회에서도 결국 수많은 희생자를 내야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을 막론하고 성직자、수도자、평신도의 무수한 무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멸시당하는 유일신을 증거하고 그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혈제를 올려야만했다.
20세기의 이 새로운 순교자들에 대해 교회는 즉시 증언청취와 문서 확보에 착수하였고 이래 이 작업은 혹은 교구별로 혹은 인물중심으로 오늘날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대표적인 것으로「영원한 도움의 성모회」가 벌인 작업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69년 10월 주교회의는 직접 이 작업을 관장하기로 하고 6ㆍ25전후의 순교사 자료를 교구장책임하에 교구별로 수집할 것을 결의하는 동시에 우선 소정의 질문용지를 각 교구에 배부하므로 일에 착수하였다. 듣건대 전주교구와 같은 데서는 이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였으나 그 후 중앙으로부터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교회의 지대한 관심과 꾸준한 노력에 미루어 6ㆍ25를 전후한 희생자들에 대한 증언과 문헌의 수집은 어지간히 진행된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은 중단됨이 없이 계속되어야하겠지만 이제는 그간 수집된 것을 한곳에 모아 검토하고 체계적으로 저일 하고 종합하여 6ㆍ25 순교사 같은 책을 펴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동시에 6ㆍ25순교자 기념관 같은 것을 마련하여 순교자들의 유물을 항구히 보존할 대책도 세워야할 것이다. 순교자들의 유물이항시전신되고 길이 보관될 보장이 없는 한 순교자들의 유족들로부터 협조를 기대하기란 매우 어려 울 것이다.
또한 앞으로는 증언을 청취하고 문헌을 확보하는데 있어서 그 범위를 더욱 넓혀야 할 것이다. 피해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극복한 역사도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직자양성、교회복구 난민구호 등에 대해서도 증언청취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밖에도 해방직후 천주교는 일제의 잔재를 어떻게 극복 했는가, 건국 작업에 어떻게 참여 했는가、독정치 세력과 교회와의 관계는 어떠하였으며 자유당집권하에서의 교회의 수난은 어떠하였는가 등등 현대사의 정리를 위해 증언과 문헌이 요구되는 분야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상열거한 일들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려며 두말할 것 없이 전담기구의 설립이 요청된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가 그러한 작업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예에 비추어 이러한 작업은 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주교단의 사업으로 전개되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업이 전국적인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후의 목격자들이 하나 둘 줄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을 서둘러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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