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동정을 베풀며 친절하게 보살펴 주시는 원장선생님의 호의에 대해서는 무한한 존경과 한없는 감사를 드리지만 돌아서 병원문을 나서는 제마을은 너무 동정을 받는 것 같아 갑자기 제자신이 어쩐지 초라해지고 남편이 불쌍해 보여 금방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속으로 눈물을 꿀걱꿀걱 삼키며 남편의 휠체어를 집으로 집으로 부지런히 밀었읍니다.
『아、우리는 언제나 돈벌이 좀 더 떳떳하게 잘살게 될 것인가…』하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잠 푹자고 나면 괜찮을 거라던 원장선생님의 말씀과는 달리 집에 돌아온 남편은 약먹은 것도 다 토해버리고 잠은커녕 하나도 덜한 기색도 없이 계속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똑같은 증세로 고통을 받고 있었읍니다.
저는 주사약을 너무 약한 것을 맞아서 그렇다고 좀 더 강한 것을 맞아야겠다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두어시간 후에 미안함을 무릅쓰고 또다시 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얻어맞고 돌아왔지만 역시 효과를 못본 채 하루 종일 몸부림치며 토하던 남편은 저녁에 아주 강한 주사를 세번째 맞고서야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져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푹 자고 일어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주사 기운이었는지 낮에는 그런대로 미음도 마시고 조금씩 음식을 먹기도 하던 남편은 또 밤이 되니 다시금 토하기 시작하고 가슴을 틀어쥐고 몸부림을 쳐대는 것이 었읍니다.
차라리 낮이라면 병원엘 가던가, 약을 사다먹기라도 한다지만 꼭 밤중에 발병을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읍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온 정성을 다하여 남편을 간호했고 밤중을 마다않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병원 저병원을 찾아 휠체어를 밀고 헤매 다녀보았으나 남편의 병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점점 더해만 갔읍니다.
때로는 야간순찰을 도는 경찰관 아저씨의 보호를 받으며 병원을 두드려도 보았으나 굳게 잠긴 문은 열릴 줄 모르고 의술은 곧 인술이어야한 다지만 매정한 의술은 답답하고 애타는 제 심정 따위는 모르는 척 외면해 버리는 것이었읍니다.
그럴 때면 저는 차갑고 싸늘한 밤공기만큼이나 야속하고 허탈한 마음을 안고 힘없는 발길을 옮기면서 실내키같은 가느다란 한숨을 남편 몰래 몰아쉬며 골짝집에서 지극한 가난 속에 눈물겨운 투병생활을 하던 악몽 같은 지난날들이 되살아나 다시금 몸서리가 쳐지곤 했습니다.
남편의 병은 주사를 맞으면 조금 가라앉는듯하다가 얼마가 지나면 또다시 증세가 나타나 심한 고통을 받으며 무엇이건 목구멍에 넘겼다하면 곧 토해버려 주사를 맞는 것 외에는 내복약은 도무지 쓸수가 없어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남편의 몸도 쇠진해지면서 더욱더 악화만 되어갔읍니다.
그런 남편을 두고 수다스런 동네아줌마들은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읍니다.
『쯧쯧쯧…어머니하고 누님생각 때문에 속앓이병이 다 생겼구먼.
왜 안그렇겠어? 그렇지만 돌아가신 양반을 생각해서 뭘 해. 산사람이나 생각해야지.』
이처럼 진지하게 남편의 병을 걱정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봐요 새댁, 집짓는 거나 이사할 때는 운수도보고 날짜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했어?』
『그런거 안보고 그냥 막했어요.』
『그봐요, 그러니 이런 일이 안생겨, 지금이라도 당장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서 굿을 하고 뱅이를 해야돼. 그렇게 병원엘 다녀도 낫지 않는 걸보면 틀림없이 예삿병이 아니란말야.
내 말 알아듣겠어?』
『아주머니 저희들은 예수님을 믿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라 그런 것 안봐도 괜찮아요, 그런 것은 다 미신이예요.』
『앗따 이렇게 답답한 사람 봤나、예수가 밥 먹여주고 병고쳐준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귀신이 붙어서 일어난 병은 약을 고쳐서 낫는게 아냐』
저는 몹시도 수다를 떠나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한 구석에 얼른 집히는 것이 있었읍니다.
<진정 수다쟁이아줌마의 말대로 귀신 이 붙어서 그렇다면 아무리 날뛰는 귀신이라도 예수님 앞에서는 꼼짝 못할 것이 아닌가, 예수님을 한번 모셔봐야지>
여기에 생각이 미친 저는 신부님을 초대하여 가정미사를 드려보기로 결심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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