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의 어렸을 적 가정교육은 아주 유명한 얘기가 되고 있다.
그 아버지는 밀이 열 살도 채 못됐을 무렵부터 이미 라띤어, 희랍어, 고전 논리학을 가르쳤다.
영리한 밀은 이 모든 어려운 학문들을 조금도 어렵다 하지 않고 척척 깨우쳐 훗날 세계 사상사에 길이 남는 대석학이 되었다. 사람의 두뇌 물질이 완성되는 것은 불과 서너살 때라니 조기교육의 필요와 효과는 확실히 있긴 있는 모양이다. 그래 그런지 영국 같은 곳에서는 귀족의 가문일수록 유년기부터 집에 가정교사를 초빙해 자녀들에게 여러 가지 교양과목과 정서교육을 실시한다.
학교교육도 있긴 하지만 한 학생의 교양과 신사교육엔 이 가정학습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소질 있는 어린이와 명문귀족에 한한 이야기다.
가난한 평민층이나 소질 없는 어린이들도 무턱대고 그런다는 것은 아니다. 존ㆍ밀만해도 그럴만한 여건과 소질이 갖춰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그가 만약 넉넉지 못한 가정에 태어났거나 두뇌가 특출하지 못했다면 그런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나 자녀들의 장래계획에 결코 무리를 하지 않는다.
여건과 소질이 있으면 정상급 예술가나 학자로서의 코스를 밟아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목수도 되고 요리사도 되는데 후자라고해서 만족과 긍지가 없느냐하면 절대 그렇진 않다.
3대를 이어 오는 식당、5대째 내려오는 도예가、6대가 거듭하는 농장 등의 평범한 가계(家系)가 얼마든지 많은데 그들은 모두 고관대작이나 대석학 대예술가 못지않은 만족과 긍지를 가지고 자기생활과 자기세계를 열어나간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안분(安分)지족의 자세일 것이다.
며칠전 대구지방법원 가사 심판부는 한 남편의 이혼 소송에「이유있다」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끌었다. 남편된 사람은 연탄배달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영세민이었다. 헌데 그 아내란 여인은 영 딴판이었다. 세끼 밥 먹기도 힘든 형편에 아들딸들을 미술학원에 보낸다, 과외공부를 시킨다, 법석이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볼 때 이 허영은 감당불능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돈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자녀들에게 미술 과외를 시켜야한다고 우겨댔다.
이 타협 없는 언쟁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남남이 되기로 판결을 받은 것이다.
한 가정의 파탄을 몰고 온 이 과외열은 바로 우리네 사회심리의 한 병리를 상징하고 있다.
과외공부를 시키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되어버린 학교교육의 문제점도 문젯점이고 소질이 있건 없건 분수에 안 맞는 과외공부를 너도 나도 시키겠다고 설치는 허영의 경쟁도 큰 문제 거리다.
요즘 아파트 단지에 가보면 도대체 어린아이 만나기가 힘든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물론 과장이 된 우스개소리지만 듣기에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몇시부터 몇시까지는 영어공부 그다음 몇시까지는 피아노 또 그 다음엔서 미술공부…이렇게 타이트하게 짜여진 과의 스케줄 때문에 부잣집 자제분들을 면담할 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연탄배달부 마누라인들 어찌 샘이 나지 않겠는가. 이 맹목적인 과외열풍 속에서 어린이들은 무자비한 줄리앙ㆍ소렐로 훈련받으며 자라난다. 내가 승리하기위해선 남의 대가리를 까야하고 남의 대가리를 밟고 일어서서라도 일등이 돼야한다는 철학. 우리는 지금 우리 자녀들에게 보다 선량한 인간, 보다 아름다운 인간이 되라고 과외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교활한 인간 보다 잔인한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만 같아 섬찟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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