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구차하다보니 이제까지 가정미사 한번 올려보지 못하였고 흡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부끄러움이 많아 신부님께 얼른 간청을 할 수가 없었지마는 오직 남편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에 수녀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을 드린 결과 이튿날 저녁남편은 자리에 누운 채 윗목에 간단한 약식제대를 꾸며놓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가정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전능하시고 자비하신하느님 아버지!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이 가정을 돌아보사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이 가정을 보호사시어 성가정으로 이끌어 주시 옵고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병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듯이 지금 이 순간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 최베드로에게도 주님의 은총을 베풀어주시어 그 고통을 하루속히 없애 주시읍고…』
신부님의 간절하고 엄숙한 기도와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정성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지긋이 눈을 감고 많은 대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색찬란한 광채를 발하시며 아름다운 뭉게구름을 타고 하늘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이 당신의 따사로운 손길을 남편의 가슴위에 올려놓고 그이의 고통을 씻어 없애주시는 형상을 머리속에 그리며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남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마음속 저 밑바닥에서 울어 나오는 진정한 소망으로 간곡히 간곡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기적은 또 일어났습니다.
그렇게도 밤만 되면 더욱 심하게 고통을 받던 남편은 마치 고단위 지통주사를 맞은 것같이 코를 디룩디룩 골며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실로 한 달 만에 처음 볼 수 있었던 평온한 남편의 잠든 모습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한 달 남짓을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토록 심하게 앓던 남편이 가정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언제 그랬냐 듯이 이튿날부터 병줄을 놓고 미음을 마시기 시작하였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신부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허락하여 우리가정에 특별한 은총을 내려주시고 수다쟁이 아줌마의 말대로 집지을 때 운도 보지 않고 이사 올 때 날짜도 보지 않아 득실거리는 귀신을 예수님께서 한칼로 쳐 이기시고 남편의 고통을 깨끗이 없애주신 흔적이 눈에 역력히 보이는 듯 신기하기만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모셔 가정미사를 올린 직후부터 남편의 병이 나았으니까요.
이런 일이 있고부터 저의 신심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체험적 신앙이라고 나할까요?
누구나 일평생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몇 번은 신앙을 체험으로 느낄 때가 있다고 하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저로서는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뒤 처음으로 체험해보는 신앙의 신비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적 신앙을 갖기보다는 눈으로 직접 보아야만 믿으려하는 어리석은 신앙을 더욱 갈망하는 것 같으며 그 어떤 신앙의 신비를 체험함으로써 그 사람의 신앙은 더욱 굳어지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남편의 병치닥거리를 하다 보니 춥고 지루했던 겨울도 다 지나고 어느덧 따사로운 봄의 입김이 포근히 여울져 왔습니다.
봄이 되면 움추렸던 몸과 마음이 활짝 펴지고 모든 만물은 크게 기지개를 켜며 힘차게 약동하는 계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봄은 우리에게 희망과 의욕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또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첫 수단으로 시작한 것이 연탄장사였습니다.
그러나 연탄장사는 처음부터 잘못된 큰 오산이었습니다.
시동생들이 조금씩은 거들어준다고는 하나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렇게나 무거운 연탄손수레를 끈다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수 없어 시작한지 두 달 만에 돈만 이리저리 없애고 그만두고 보니 수중에는 단돈 삼천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돈을 가지고 애당초 우리가 생활수단으로 삼고자했던 구멍가게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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