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바티깐」공의회의 문헌 중에서 가장 가슴을 찌르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69항이다. 공의회는 교부들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현대의 가장 가증스러운 특성 즉 그 어느 시대보다도 부유한 오늘의 세계에서 기아로 인해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는 형제들이 많은 비참한 사실을 지적하고 이처럼 큰문제의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교회안의 빈부차이 마저 극심함을 의식하고 책임감을 절감한 나머지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라, 죽게 버려두면 너희들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한 교부들의 말씀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불우한 형제들을 돕는 것을 교회의 의무로 알고 여러 가지 운동과 사업을 계속하고 있는 교회가 이 같은 일을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시행하고 보다 영구적이고 크리스찬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한 새로운 방향을 기대하고 있는 이때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의 영광이 불우한 이웃들에게서 빛나기 위하여 교회가 가난한 형제들의 편에 서서 형제애의 실천을 호소하고 정의를 외쳐왔음은 감사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약속했던 대로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서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느낌마저 든다.
정의구현운동이 거의 중단된 것은 부정을 일삼는 자들을 규탄하는 운동이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측도 있고 물질주의와 배금사상을 경계하라고 역설하며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지도자들 자신이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부유층의 생활을 하고 있는 반면에 교회의 고용인이나 많은 신자들의 생활이 비참한 실정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측도 있다.
교회지도자들이 강단에서 가난 운운하고 외치지만 생활은 부유층의 것일 때 불우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이론적일뿐이기 때문에 계속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고용인들의 월급이 20% 인상된 것을 가지고 정의라도 실천하듯이 표현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인상되는 물가에 비기면 이들의 생활개선은 요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교회안의 빈부차이도 심각하면서열로 보아서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예컨대 교회에서 종사하는 운전사의 월급은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와 비교할 때 너무나 차이가 심하다고 하면 과장된 말이겠는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고용인들의 없었던 불만이 터져 나온다고 볼 수 있겠는가?
교회의 지도자가 소유하는 승용차가 처자식을 부양하는 운전사 월급의 3년치에 해당되는 거액이라고 해서 자가용차를 소유하는 것 자체를 부당하다고 할 신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환경에서 가난을 설파하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장하기가 부자연스러울 것이 아니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정에서 정의구현의 운동이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가난을 숙명으로 생각하고 불우한 형제들의 고통을 도외시하는 지도자들의 안이한 설교가 더욱 지혜로운 편이 아니었을까?
서민들에게 잘 살 수 있는 가톨릭국가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이때 공의회의 말씀에 의해서 교회는 쇄신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회지도자들만의 과업도 아니며 교회지도자전부가 그리스도의 가난을 망각하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특히 많은 수도자들이 가난한 그리스도를 생화로서 증거 하기 위하여 심려를 기울이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이는 설교보다 생활과 표양이 더 중요한 시대에 너무나 감사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서민들에게 약속하고 정의를 더욱 효과적으로 내세우기위해서는 지도자들이 먼저 10여년전에 발표한 문헌을 상기하고 겸손한마음을 견지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도 굶어죽는 형제들이 있기 때문에 적어도 문헌을 발표한 분들은 살인자임이 확실하다. 전반적인 사회정의를 이룩하기 위하여 비판하고 격려해야하지만 실천단계에 있어서는 교회내부의 정의가 먼저 구현되어야 한다고 한다. 교회는 사회의 표본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보면서 자신의 눈 안에 있는 돌보는 못보고 교만의 희생자들일 수 있는 종교지도자들이 발언한 살인자라고 한 말씀이 처음 듣기에는 어색하게 들리지만 사회정의구현의 일단계인 교회내부로 부터의 쇄신을 가능케 할 수 있는 힘찬 말씀이기에 성령을 받아서 이 말씀을 설파하는데 주등이 되신 故 요한 23세의 겸손과 사랑에 찬 인간미에 감사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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