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저는 새벽녘 눈을 뜨기가 무섭게 윗방으로 올라가 콩나물에 물주는 것으로부터 하루일이 시작되면 밤 열두시까지라도 마치 기차가 레일을 따라 자기 길만을 달리듯이 저 또한 일하는 기계가 되어 한 눈 팔지 못하고 제 일만을 해야 했습니다.
어쩌다 늦잠이 들어 늦게 잠을 깼을 때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윗방을 향해 두어 발짝 떼다가 발에 힘이 없고 갑자기 온몸에 맥이 빠지며 떼리가 핑그르 돌아 방바닥에 그대로 풀석 주저 않아 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두어바가지 퍼주다가도 그런 증세가 일어나면 물을 못주고 그대로 방바닥에 누운 채 콩나물동이의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고 한참동안기운을 차려야 했습니다.
워낙 제 몸이 약해서 평소에 늘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는 남편은 윗방에서 물주는 소리가 안 나면『율리아, 율리아 왜그래』하며 다급하게 저를 불러대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제일 마음 아픈 일은 남편이 콩을 가려주는 일이었습니다.
항상 저의 고달픈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고생시키는 것이 마음아파 한숨만 푹푹 쉬며 안타까와하던 남편은 조금이라도 제 일을 덜어주겠다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서 쟁반위에 콩 한 줌씩을 펼쳐놓고 가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까지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는 일이기에 무척말리고 입씨름도 많이 해보았지만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 제발 저 혼자서 할 테니 당신은 그만두세요. 옆으로 누어서 어떻게 한다고 그러세요. 허리가 뒤틀리잖아요.』
『괜찮아 당신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나의 이 기쁜 마음을 건드리지 말아줘』
『기쁜 마음이라니요. 뭐가 그렇게 기쁘세요?』
『그게 뭔데요』
『이렇게 당신의 일을 거들어 줄때가 제일 큰 기쁨이고 그 반대로 당신이 피로에 지쳐 고달파하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도와줄 수 없을 때와 내가 어떻게 하다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 원호대상자가 되어 원호금만 매달타도 당신을 이처럼 고생시키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면 내 가슴을 쥐어뜯고 싶도록 괴롭고 그렇게 내 자신이 저주스러울 수가 없어』
『당신 또 그 소리예요. 운명이라고 생각하시고 모든 것을 잊으세요. 하느님은 당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큰고 큰 고통을 주신다지 않아요. 저 아무렇지도 않아요. 몸은 비록고달파도 마음은 너무 너무 행복해요. 당신만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계신다면 이처럼 내 자신이 노력해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골짝 집에서 살 때를 생각하고 이렇게라도 사는 것을 하느님께 항상 감사하면서 우리 마음 편히 살기로 해요』
『……』
남편은 늘 나라를 지키다가 이처럼 비참한 불구자가 되었으면서도 공무집행 중에 당한 부상이 아니라하여 원호대상자가 못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일꾼이 못되고 또한 떳떳한 입장이 되어있지 못하다는 데에 커다란 수치심과 자책감, 그리고 저를 고생시키고 있다는 것에 크게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온 뒤로 그처럼 생활의 어려움과 생사의 갈림길에서 병고와 싸우면서도 당신 자신의 손으로 정성들여 태극기를 그려 항상 머리맡에 걸어두고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국가에 대한 반성과 국가에 대한 정신적인 보속을 하며 괴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으며 그러한 남편이 한없이 가엽고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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