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라고 일컫는 원호대상자들, 얼마나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얼굴들인가-그에 반해서 항상 수치심과 자책감 그리고 열등감 속에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괴로움에 더욱 몸부림치며 세상을 한스럽고 부끄럽게 살아가고 있는 남편, 남과 같이 학생다운 학창시절 한번 보내지 못하고 굶기를 밥 먹듯 배를 곯아가며 검정색 작업복 차림에 구두 한 켤레 신어보지 못한 채 졸업식 전날까지 아르바이트 해가며 고달픈 학창생활을 보내야했던 남편.
그러면서도 남에게 뒤지기 싫어서 언제나 근면 성실한 자세로 모든 생활에 임하여 주위사람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는 그 남편이,
어쩌다가 불행을 당하여 온갖 사회의 냉대와 가혹한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다시금 헤어날 수없는 영원한 고통과 괴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참으로 남편의 운명은 너무도 가혹하고 기구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기구하고 가엾은 운명 속에 보상받지 못하는 남편의 인생을 조금은 행복하게, 조금은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위하여 저는 그토록 한사코 말리는 부모형제와 친척 친구들 그리고 오빠의 무자비했던 몽둥이 뜸질에도 굴하지 않고 기꺼이 이 길을 택했던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지가 않아서 저는 이렇듯 발버둥을 치며 저 역시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면 콩나물에 잔발이 날까봐 밤잠을 설치며 찬찬히 물을 퍼주어야 하고, 새벽녘 동이 트기가 무섭게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기까지 한 아무도 없는 한적한 새벽거리를 콩나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손을 호호 불며 입과 얼굴이 온통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를 견디어가면서 동당걸음으로 시내 여기저기 식료품 가게에다 배달을 해줘야 했습니다.
이러한 저를 보고 동네사람들은 어지간히도 여자가 억척스럽다고 생각했는지「도대체 아주머니는 밤에 잠을 자는 거요 안자는 거요, 얼마나 일찍 일어나면 벌써 콩나물을 갖다 주고 오는 거야, 아마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지런할꺼야」『그게 무슨 소리야, 대한민국은 고사하고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할꺼야, 그래도 내 딴에는 이 동네에서 내가 제일 일찍 일어나 밖에 나온다고 자부했는데 저 아주머니만은 당할 수가 없다니까, 저런 아주머니는 상 줘야 돼, 상 줘야 돼』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역시 저에게는 배달이 큰 문제였습니다.
콩을 가린다거나 기르는 문제는 집안에서 해나가는 일이니 그런대로 한다고 하지만 장날 시장에서 콩을 사올 때나 콩나물 동이를 머리에 이고 날라줘야 하는 것이 저에게는 커다란 불편이었고 고통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콩을 너댓말씩 사서 머리에 이고 올 때면 목이 빠져나갈 것 같이 아프고 힘이 들었지만 도중에서 쉴수도 없어 집에까지 이고 오면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전신에 힘이 숙 빠져 움직일 기운도 없었습니다.
새벽으로 콩나물 동이를 나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동이씩 머리에 이고 배달을 해주다보면 벌써 날이 밝아 아침 찬거리를 사러 나온 동네 아줌마들이 가게 밖에서 저를 기다리기가 일수였는데 그럴 때는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시장이나 읍에 볼일이 있어 나가게 될 때면 가게를 보아줄 사람은 없고 남편은 방에 누워있으니 가게를 맡길 수도 없어 아예 마음 편하게 남편을 방에 둔 채 가게 문을 닫아버리고 가곤했는데 어른들은 왔다 가게 문이 닫혀있으면 그냥 돌아가 주었지만 짓궂은 꼬마손님들은 방에 누워있으면서도 나와서 물건을 팔수 없는 애타는 남편의 마음은 조금도 몰라주고 가게 문을 그 조그만 손으로 「꽝꽝」때려대며『자요 자요』할 때는 다시금 자신의 비애를 느껴본다는 남편의 말을 들을 때 저의 마음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저는 이듬해 봄이 되자 만사 제쳐놓고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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