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삼십이 넘은 여자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만이 제가 조금은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라고 굳게 결심한 저는 낮에는 도무지 시간이 없어서 저녁이면 피곤해 지쳐 꼼짝하기도 싫은 몸뚱아리를 이끌고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가게를 맡겨놓은 채 학교운동장에 가서 열심히 배웠습니다.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제 몸은 마치 자랑스런 훈장이라도 단 듯이 여기저기 시펄시펄한 멍이 들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으며 멍든 상처에 일일이 약을 발라주면서 안타까와 하던 남편은 한사코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율리아 당신 이러다가 병나겠어. 멍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이게 뭐야. 정말 마음이 아파 못 보겠어.』
『괜찮아요. 이제 조금만 더 배우면 탈수 있는걸요. 너무 걱정마세요.』
『어떻게 걱정이 안 돼. 설사자전거를 탄다 해도 그렇게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마음을 놓느냐 말야.』
『그렇지만 저는 자전거를 꼭 배워야 돼요. 자전거를 탈줄 알면 콩과 콩나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녀야하는 아픔도 없고 여러 가지로 생활이 편리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니 당신은 가만히 계세요. 저는 꼭 배우고 말테니까요』
『그놈의 고집 또 나오는구먼. 최씨 고집도 대단한데 고씨 고집은 도무지 당할 수가 없으니…어쨌던 나는 모르겠어.』
저는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길만이 제가 살 수 있는 길이며 꼭 배워야한다는 각오 아래 넘어지면 일어나고 꼬꾸라지면 또 일어나 다시 핸들을 잡아 죽기를 결심하고 결사적으로 배웠습니다.
드디어 저는 올라타는 것 까지 완전히 배웠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기뻤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으며 앞을 향하여 달리는 스릴과 상쾌한 기분은 처음 자전거를 배워 타보는 사람이 아니면 감히 맛볼 수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이제는 시장에서 콩을 머리에이고 오느라 목 빠질 것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아도 좋았고 이른 새벽 콩나물 동이를 이고 동당걸음을 치지 않아도 되었으며 콩을 사올 때도 자전거에 싣고 오니 수월해서 좋고 배달을 할 때에도 자전거로 쪼루룩 쭈루룩 실어 나르니 빨라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시뿐, 저는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날 오후
콩나물동이를 자전거에 싣고 버스정류장 앞 복잡한 거리를 바삐 지날 때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된 마음으로 조심조심 사람을 피하여 서서히 가고 있는데 갑자기『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내동댕이쳐지듯 땅바닥에 나딩굴었고 그 순간 투박스럽고 묵직한 바퀴가 저의 발을 사정없이 짓누르며 넘어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경운기와 충돌을 한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고 전혀 예기치 못한 사고였기에 도리 없이 당해야만했으며 주차장 앞에 늘어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우짜듯 구경을 하는 가운데 누군가의 손에 제가 일으켜지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노란 콩나물들이 저의 눈에 비쳤을 때 저는 그만 저의 분신이 흩어져 있는것 같은 슬픔이 북받쳐 저의 몸은 돌볼 겨를도 없이 흩어진 콩나물을 주섬주섬 동이에 주워 담으며 부끄러움도 잊은 채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저의 몸은 한군데도 다친 곳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더구나 경운기 바퀴가 지나간 발목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으니 이것이 어찌 예사 일로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틀림없이 하느님께서 저를 특별히 보충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언제나 자전거를 탈 때는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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