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귀가 됩니다. 온 마음이 눈이 됩니다.
생명이 죽어야 생명을 살린다는 보편적 진리 앞에 겸허해지는 순간이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창조한 침묵이 내 주위로 다가옵니다. 잇빨 사이에 물리는 쇠고기 점에서 생명의 처절함을 맛봅니다. 죽어가는 고양이의 눈망울에서 생명의 절규를 판독합니다. 피어오르는 솔잎에서 생의 지속성을 보고 정오의 매미소리에서 삶의 질서를 듣습니다.
이래서 생은 삶이고 삶은 나눔인가봅니다.
시간을 나눕니다.
재능을 나눕니다.
가진 것을 나눕니다.
침묵을 나누고 몸짓을 나눕니다, 하나의 밀알이가루가 되는 아픔을 나눕니다.
시간을 나눔은 생명을 나눔입니다.
재능을 나눔은 인류의 공동목표를 지향함입니다.
가진 것을 나눔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침묵과 몸짓과 아픔을 나눔은 삶을 나눔입니다.
며칠 전 한 신우(信友)는 내게 성토마스의 이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인내는 악을 보지 않는데 있지 않고 악을 보면서도 슬픔에 빠져들지 않는데 있다. 인내롭다고 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데 있어 입게 되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쾌활함과 통찰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내롭지 못해 자주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이해와 관용은 먼 거리에 두고 사는 우리네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말마디입니까. 두고두고 생각하며 생활에 옮겨볼 말입니다.
나눔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인간이 본래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보던 어떻게 좋은 것 적극적인 것만 나눌 수 있겠습니까?
아쉬움을 나누어야하고 슬픔을 나누어야하고 부서지는 아픔을 나누어야하고 노여움과 분노를 나누어야하고 선의 결함, 혹은 성장의 부산물이라 하는 악 또한 나누어야합니다.
그래서 라디슬라우스 보르스는 좋은 것을 나누면 배가되고 괴로운 것을 나누면 반으로 준다고 했나봅니다.
사람이 살아온 역사 안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변혁이 있어왔습니다. 무혈혁명 유혈혁명 산업혁명이 있었습니다. 공산당혁명도 있었구요.
근래에 와서는 녹색혁명이라는 말도 나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눔의 혁명은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소유하려고만 하고 커지려고 만하고 유명하려고만하고 부풀어 날려고 만하는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힘을 다른 사람의 선을 위하여 쓰려고 하는 집중적 에너지는 어디에서 발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이런 말은「하느님 힘내세요.」에서 꼬마 제인이 한 질문과 동일한지도 모릅니다.
『하느님, 사람을 죽게하고 새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대신 왜 살고 있는 사람을 그냥 살게 해 주시지 않나요?』
정말 나눔의 혁명이 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죽지만 소멸되지 않고, 사랑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마음이 세상에 가득차게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지고의 아름다움은 슬픔을 동반하고 있다는 군요. 이 슬픔이 편협한 인간의 마음속에 머물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가 봅니다.
슬픔을 받아들일 수없는 버림받은 자아위에 앉아 뜨거운 마음의 눈으로 기다려 보아야겠습니다. 창조한 침묵의 힘이 내게로 와서 나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도록 말입니다. 그분의 거대한 고독의 슬픔 속에 나를 상륙시키고 우리를 상륙시키도록 말입니다.
나눔의 혁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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