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자 가톨릭시보에 실린「군종단 5년간 장기복무 지망자 전무」라는 제하의 5단기사는 특히 군인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근래에 새로운 부임지로 왔기에 아진 서로 얼굴을 맞 댄지 얼마 안되는 내게도 신자들은 다그쳐 물어왔다.
『신부님도 제대하실 건가요?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들 이러십니까? 신부님들이 고생되신다고 다 떠나시면 말이나 됩니까?』하도 세차게 물어 와서『그게 어디 고생때문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하며 이내 화제를 돌려 버렸지만 문제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럼 군종신부는 왜 제대를 하려 하는가?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적어도 편할려고 신부된 사람은 없다면 고생이 싫어서 제대하려고 하는 신부도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무언가 불만이 있어 제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만족이란 드물다는데 짧은 지면에 군종신부의 불만을 다 토로할려고 펜을 든 것은 아니다.
다만 군인주일을 맞이하여 생각나는 일이 있어 몇 자 적어 보려는 것이다.
전방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병사들에게「인격지도」를 하고는 고백성사도 주고 면담도 하다가 늦게 집이라고 돌아와 저녁 한술 떠먹고 피곤하지만 미사는 꼭해야겠다는 풋나기(?)열실에서 제대를 꾸미고 막 미사를 시작하려는데 옆집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미사지낼 성당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요 사제관이라 해야 전세방 얻어 지내는 형편이니 진정 거짓말은 아니다.
밤이라 더 크게 들리는지는 몰라도 창피한 줄도 모르고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워대는데 어디 미사드릴 분위기가 되겠는가? 그러나 이왕 제의까지 다 입고 있던 지라 부랴부랴(?) 미사를 마쳤지만 소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날 나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신학교 때 영성신학을 가르쳐주시던 최민순 신부님께서 살아계시다면 달려가 사과하고 싶다. 신부님께서 강의시간에 수평주의를 비난하시고 기도와 묵상을 강조하실 때 속으로 은근히 비판했었다.」「낡은 신학의 소유자」라고.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당시의 나의 생각은 가끔은 습관적이었고, 가끔은 싫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매일 성체조배하고 기도하고 미사하고 난 다음의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은연중에 이런 것이 전제되고 난 후의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주님이 어디엔들 안 계실까마는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 사제에게 있어서 심장과도 같다. 「성체가 모셔져있는 곳에서 미사를 지내고, 가끔 성체조배를 할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고 외치고 군종단을 떠났던 선배 신부님들의 기억이 날 더욱 자극한다.
나의 이런 말이 군인주일이면 으레『집이 없다, 책이 없다, 성당도 없다』고 연례행사처럼 외쳐대던 군종신부들의 통속적 넋두리라고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기를 부탁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한 맺힌 울분이 있다. 우리 군종신부들에게 심장을 달라.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하고 돌새는 들에서 놀아야하듯 신부는 성체와 가까이서 지내야겠다. 우리에게 심장을 달라. 우리에게 뛰고 달릴「거점」을 확보해 달라. 우리에게 성당과 사제관을 달라! 개인적으로 보아 신부가 목사나 법사들보다 사명감에서나, 능력 면에서나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러나 법사들은 법당을 먼저 짓고 들어오고 목사는 이미 교회가 다돼있다. 주일만 되면 개신교나 불교는 가만히 있어도 신자들이 모여오고 장소가 없어 정해준 시간에 못하고 다른 시간에 교회를 빌려 해야 하는 천주교는 신부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신자가 모이기 힘들다.
어떤 신부가 저들에게 지고 싶은가! 어떤 신부가 잘해 보고 싶은 맘이 없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지내다보면 신부는 정신과 마음과 육체가 모두 소모되기만 한다. 보충은 되지못하고 소모되기만 한다. 선후배 성직자들과 교형자매들의 넓은 이해와 반성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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