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어느 일요일이었다. 성당에서 미사에 참예하고 나오는데 키가 몹시 작고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한분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잠시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비를 맞고 그냥 내려가시는게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지만 동행도 없는 것 같았고 우산을 받쳐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나는 얼른 뒤쫓아 가서 우산을 같이 쓰고 할머니를 부축하면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할머니는 무척이나 고마와하셨다. 몸도 불편하신데 할머니 혼자 어떻게 오셨느냐는 물음에 그 전에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할아버지와 아드님과도 같이 모두 열심히 다녔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느리를 얻고부터 아드님도 냉담하고 며느리가 할머니도 못 다니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며느리에게「미친 늙은이」란 욕까지 들었지만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에도 주일미사에 한번도 빠지지 않으셨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사에 나오실 때 성체를 모시기 위해 일부러 아침밥은 꼭 안드시고 나오시는데 그 추운 겨울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모시고 나면 배도 고프지 않고 몸이 훈훈해져서 암만 추운 겨울이라도 추운 걸 모르신다면서 정말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시는 것이다. 나는 할머니의 깊은 신앙심에 머리가 숙여질 뿐이었다.
할머니를 댁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면서 나는 생각해 보았다.
종교문제를 떠나서라도 어떻게 며느리 된 입장에서시어머니께 그렇게까지 대할 수가 있을까? 윤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또、아내의 만류에 냉담하고만 남편의 너무나 도약한 신앙심! 참으로 안타까왔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고 나오던 많은 신자들 중、비를 맞고 가시는 할머니께 눈을 돌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스러운 하느님의 성전에서도 그렇게 철저히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밖에 나가서 나는「천주교신자」라고 떳떳이 말을 하며 하느님대전에 형제들을 이끌어 들일 수 있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 또한 반성해보았다.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하는 빈껍데기신자는 아닌지、내가 어렵고 곤란 할 때만 주님을 찾고 나 자신을 위해서 만기도하는 것은 아닌지、비록 여러가지 복잡한 교리와 이론을 잘 안다하더라도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 그런 사람보다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 줄 아는 그 할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인가를…
부디 할머니께서 건강하게 어떤 역경 속에서도 굳굳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또 주님의 크신 은총으로 아드님과 며느님에게도 따뜻한 사랑의 불을 놓아 열심한 성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기 를 간절히 빌었다.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읍니까?사랑하 는자녀들、우리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Ⅰ요한3ㆍ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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