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저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고 근심스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소변에 피가 나오고 있다는 말에도 남편은 애써 태연한척 하면서 오히려 제가 환자가 아닌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저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지만 역시 남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 어떤 놀라움과 불안의 빛은 감출수가 없었으며 어두운 그림자 또한 역역히 읽을 수가 있었읍니다.
저는 생각다 못해 남편의 방광수술을 했던 대전 P비뇨기과를 찾아 갔읍니다.
원장선생님을 만나보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나 저의 간절했던 기대는 병원이 들어있던 건물 앞에 섰을 때 완전 산산조각이 나고 저에게는 더 큰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읍니다.
마땅히 붙어있어야 할 병원 간판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낯선 간판이 붙어 있었으며 옛날병원은 멀리 대구인지 부산으로 이사해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너무도 실망이 되어 공든 탑이 한꺼번에 와그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감을 안고 바위처럼 그 자리에 오뚝 선채로「아! 나는 어떻허지. 이제 어떻하면 좋지. 오 하느님 하느님…」하며 홰 울음이라고도 처버릴 것같은 슬픈 심정에 한발자국도움직일수가 없었읍니다.
아니 움직이기가 싫었읍니다.
참으로 이때처럼 하늘이 내려덮는 것 같은 절망감을 가져본 적도 일찌기 없었던 것 같았읍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서있을 수만은 없어 얼마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저는 비뇨기과 전문의가 있다는 적십자병원을 찾아갔읍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나 할까요.
병원 문을 막 열고 들어가 앉아있는데 수술실에서 나오는 원장선생님의 손에 핏덩이처럼 빨간 덩어리 하나가 들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읍니다.
처음 그것을 보는 순간 속이 메스껍고 역겨워 현기증마저 느꼈으나 그것이 어느 신장병 환자의 나쁜 신장을 떼어낸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더구나 남편의 건강이 또한 그렇고 보니 그것이 도무지 남의 일같이 느껴지지가 않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노라니
『방광과 신장에 모두 결석이 생겨 있읍니다. 그것도 신장은 한쪽을 떼어내야 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으나 몸이 워낙 쇠약하니 우선 방광결석이나 수술을 해봅시다』
하고 말하던 P비뇨기과 원장선생님의 음성이 멀리서 아주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가 하면 때로는 가까히 아주 가까히서 확성기처럼 큰 소리로 저의 귓전을「쾅쾅」때리고 있어 더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남편의 증세를 대강대강 주워 섬기고 계속 약을 가져다 먹어라는 원장의 말을 뒤로 남긴 채 약봉지를 받아들고 정신없이 병원 문을 뛰쳐나오고 말았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길에 차창으로 불어보는 바람도 도무지 시원치가 않았으며 아까 병원에서 본 떼어낸 빨간 신장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려 눈을꼭 감아 버렸으나 역시 괴로운 마음은 마찬가지였고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짓누르기라도 하는듯 가슴만 답답했읍니다.
그날이후 저는 대전을 드나들며 약봉지를 날라다 남편의 병 치료를 해보았지만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가도 남편의 증세는 별로 호전되는 기색도 없이 저의 애간장만 촛불처럼 타 들어갔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체력의 한계를 느꼈는지 그만 자리에 눕고 말았읍니다.
사람이 일단 건강이 나빠지고 병이나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모든 것이 귀찮은 것이지만 몸이 아파도 죽을 정도가 아니면 마음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있는 팔자 좋은 여자도 못되는 저는 언제나 그랬듯이 한고비만 넘기면 죽으나 사나 머리를 쳐들고 일어나 움직여야 했으며 제가 누워있으면 가게일도 문제이지만 제일로 남편의 꼴이 말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남의 손에 맡겨놓을 수 없는 콩나물 때문에도 더욱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읍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