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더위에 남포동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아스팔트보도는 녹아 찐득찐득하고 햇쌀은 무쇠라도 녹일듯이 내리쬐는데『저、선생님 아닙니까』나는 무심코 소리나는데로 돌아봤다.
『아、역시선생님이시네. 전 선생님 밑에서 공부한 이진숙입니다. 선생님 오래간 만입니다. 더운데 어떻게 지내셨어요』흰색 스락스에 하늘색 가아디 강차림의 십오륙세 소녀였다. 나는 제자란 말에 기뻤고 일면 반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그래…』하고선… 기억을 더듬으려 무척 애를 썼다 소녀는 한사코 극장 옆 양과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것이라도 들자는 것이었다.
값비싼 양과가 수북히 놓이고 음료수까지 몇 병을 시켜다 놨다. 그리고 무슨 새실이 그 다지도 많을까. 방긋방긋 웃으면서 상반신까지 흔들어 대면서 말하는 양이 참으로 귀엽기만 하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나하고 두고 간 빽을 찾았으나 역시 보이질 않는다. 내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것만 같았다.
지난 3월에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퇴근할 무렵 조기형이란 제자를 학교 정문 밖에서 만났다.
금방을 크게 하던 그의 부모님은 지식도 교양도 있는 분이었고 가정교육에도 엄한 편이었다. 기형이는 착실하고 순진했으며 저능아라 성적은 항상 하위였다. 지금은 대전으로 이사하고 학교도 대전으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차림새는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으며 표정도 예나 마찬가지로 밝았다 3년이란 세월이 기형이를 어른스럽게 만들어 놨다. 많은 이야기도 있고 오늘 하루 밤을 선생님 곁에서 자고 가겠다는 것이다. 밤에는 늦게까지 집안이야기、학교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눈을 붙였을 때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아침에 나는 기형이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출근을 했다. 엄마이야기에 내가 없는 동안 기형이는 책을 보다 낮잠을 자다 오후3시경 간다온다 말 한마디 없이 살아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책상 설합을 열어봤더니 그전 날 받아둔 월급봉투와 선물로 받은 파아카 만연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확실히 무서운 세상이다. 나는 하도 괘심하기에 대전으로 그리고 기형이와 같은 동기에게 연락을 해봤으나 알길이 없고 누구의 말에 기형이는 그 방면의 상습자라는 말이었다.
요즈음 등하교시간의 버스를 타보면 으례 여학생 남학생들이 좌석을 점령하고 그들만이 통하는 이야기가 질척이다.
『갑식이 그느마는 요즈음 왜보이지않노』
『앓고 누었다는데』
『아 그래서 대학교수가 보강한다는 것가』
고등학교 일학년 남학생들의 이야기다. 물론 갑식이란 선생님의 이름이요 대학교수란 별명일께다.
『어제 갈비씨한데 혼났다』
『왜 그 갈비씨가 신경질이거든』
『나는 도라무깡 시간만 되면 기가 질려』
『나는 빈대코 시간만 되면 잠만 잔다에』
『예 난 어제 광복동에서 쪼빗또하고 달떵이하고 걸어가는 것봤어. 쬐끔 질투가 나던데』
이것은 女中3학년생들의 이야기다. 이 별명은 그래도 애교가 있어 좋다. 심지어는 곰베팔이、곱사뱅이、절름발이 아편쟁이까지 등장하게 되고 보면 기절할 노릇이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란 손꼽만치도 없다. 사회와 학교와 가정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반항과 탈선과 방종 그리고 나태와 낭비는 그들의 전매특허란 말인가.
생활지도가 절실히 느껴진다. 정신혁명을 새삼 절규하고 싶다. 근래 와서는 교회와 상담보도원 감화원이 우후죽순 격인데 범죄는 날로 더해가기 만하고 대형화로 탈바꿈해간다. 우리들이 다 같이 갈구하는 세계는 언제 오려나. 서로 돕고 사랑하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 우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같이 반성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고 양보 봉사 희생할 줄 아는 새 마음 갖기에 마음 써야겠다.
이해와 타산에 앞서 사랑과 성실의 미덕을 다 같이 가져 명랑하고 안정된 사회를 조성하지 않으련지. 제발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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