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발칵 뒤 짚어 놓았던 소위「번데기파동」도 점차 망각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10여명의 어린 싹들이 무참히 짓밟혔던 그 악몽과도 같은 사건도 세월이지나면 점차 잊혀져갈 것이다. 당국이 사료용이 외의 번데기시판을 전면 금지키로 건의했다니 서민들이 즐겨 찾던 번데기의 그 향토 색짙은 고소한 맛도 이젠 잊어야만할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단 한가지 사실만은 결코 잊을 수도 없고、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일부 의사들의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한 무책임한 태도이다. 꺼져가는 어린 목숨을 안고 밤새워 뛰어다니며 무려 10여군데나 되는 병원 문을 두드렸으나 가는 곳마다 진료를 거부당했다는 이 비정한 사실을 그들은 과연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 런지.
▲청진기 한번 대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어린 자식의 주검을 끌어안아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길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는 아동을 보고도 이를 못 본채 무심히 지나칠 행인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는 아이를 보면 달래주고、상처 난 아이는 아픈 곳을 어루만져라도 주고 가는 것이 동방의 해 뜨는 나라 이민족의 따뜻한 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병원 의사들의 심장엔 피도 메말랐단 말인가. 그들도 분명 우리와 같은 피를 이어 받았을 사람들인데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들 병원 나름대로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특히 노동판에서 받은 일당으로 50원어치의 번데기를 사다줘야 했던 그 아버지의 초라한 차림새가 진료거부의 원인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런데 이번 사건과 관련、처벌을 받은 병원이 있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번 큰 아픔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의 이 같은 한 가닥 기대마저 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삼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같은 것을 들추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전 우주보다도 무겁다고 하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사명과 책임은 어느 누구의 그것보다도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당국이 의사들에게 금전등록기의 사용을 지시했을 때 귀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일반 상행위와 같이 취급한다며 강력히 반대했던 이 땅의 仁術이 아니었는가. 참 사랑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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