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한방울이 죽어가는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헌혈합시다. 헌혈합시다!』『건갈할 때 당신의 피를 보관해드렸다가 당신이 위급할 때 되돌려드리는 헌혈증서제도가 있습니다. 헌혈을 하십시오. 헌혈을 하십시오!』
앰볼란스를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거리에 세워놓고 확성기로 크지 않게 속삭이듯 외친다.
헌혈구호를 쓴 띠를 어깨밑에 두른 여학생들이 삐라를 나눠주며 방싯 미소로 권한다. 간혹 이방인들도 섞여 열성적이다. 하루 웬종일 서서.
그러나 반응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주사공포증이 의외로 많음에서도 그렇고、시뻘건 피가 큰 주사기에 가득 담겨 나오는 오싹하는 광으로 젖니하나 제때 빼주지 못하는 표독치 못한 우리네 마음씨가 헌혈을 못하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피와 생명을 등일시 하였던 전대신앙자의 후예들이기 때문일까. 좋은 일은 좋은 일인데 선뜻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웃본당의 홀어머니가 기른 20세의 아들에게 심장판막증이란 청천벽력의 진단이 나왔다.
생명을 완전히 보장할 수는 없으나 시급히 수술해야만 살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비가 3백만원이란 거액. 가난에 쪼들린 살림엔 단돈3만원도 문제인데 3백만원이라니….
비탄에 젖은 어머니의 눈물도 다 말라 붙어 충혈 되고 생기 잃은 눈엔 허탈만 남았다.
이를 아신 자애심 많으신 본당신부님이「형제사랑의 실천」이란말씀이 구두선 (口頭禪) 이 되지말게 하자고 간곡히 간곡히 호소하셨다.
신자들은 이에 호응하여 주머니 끈들을 풀었는데 만족할 만큼은 되지못했지만 이럭저럭 수술비가 마련되어 대 성공리에 수술이 끝났다.
경과가 좋아 어머니에겐 더 없는 기쁨이었고、자선의 공동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본당신부님도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적은정성들이 모여 그 열매가 맺은 것을 보고 신자들도 무척 대견해했다. 그러나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회복기 3개월만에 갑자기 성당 안에서 쓰러지더니、영영 다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오호 가엾은 젊음! 정해진 죽음의 날이 그다지 빠를 줄이야. 단장을 끊는 어머니의 비애! 그런데 일부 뒷얘기가 경마스러웠다.
『겨우 그걸 더 살자고 온 교회가 그다지도 떠들썩하였단 말인가…』
사실 우리의 소리와 하느님의 음성은 너무도 다르다. 아직도 우리 안에 뿌리 채 뽑혀지지 않은 못난 속성 (俗性) 은 현재의 결과에만 앙칼지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선의 순수성이 빗나가 무엇을 주었으니 반드시 무엇이 꽃피어있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쉽게 불만을 토한다. 움추려든 손으로 겨우 기천원 던져주곤『왜 훌륭히 살아 내 훈장이 되어주질 않느냐』고 투정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선의 속임수 안에 그러나 주님은 그러시지 않으신다.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다』 (마테오6장45절)
『나 네게 무엇을 주랴? 대답해 보아라. 나는 네게 십자가의 능욕과 피와 물과 살을 주었노라. 나 또 네게 무엇을 주랴?』 (성금요일 예절 중)
주님은 우리에게 철저히 그리고 조건 없이 자신을 주신다.
오늘도 위독한 이웃의 생명을 구하려고 헌혈의 군종 속에 섞여계신 허름한 사나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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