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어느듯 중턱에 접어들었다. 뜰 앞의 한포기 국화꽃이 한결 애잔스럽게 보이는 계절―이 가을은 우리에게 세월의 빠름을、그리고 덧없음을 문득 께닫게해 준다. 가을밤 영창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타고 들려오는 낙엽지는 소리는 말할 수 없는 아쉬움마저 느끼게 한다.
▲가을의 낙엽은 이른 봄 그것이 새잎으로 돋아나기 시작할 때 이미 기약됐던 사실이다. 오늘의 이 낙엽들도 한여름 뜨거운 햇살 속에서 한껏 푸르럼을 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가을을 타고 불어오는 소슬바람과 함께 한잎 두잎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 싱그러운 푸르럼이、그 싱싱한 생명이 조용히 막을 내릴 채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이단풍도 하나 둘지고 앙상한 가지만 북풍에 떨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회색의 계절、죽음의 계절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다. 대자연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께닫게 해준다. 태어나서、자라고 노쇠해서 죽음을 맞는 인생의 축소판을 여기서 보는 듯하다. 청장년기의 그 싱싱항 젊음도 세월의 흐름 앞에는 어쩔 수 없어 곧 노쇠기를 맞기 마련이고、마침내는 마치 낙엽 지듯 하나 둘 이 세상을 떠나야하는 것이다.
▲낙엽 진 나무의 앙상한 모습은 마치 죽은 것과도 같으나 그것이 영원한 죽음의 상태는 아니다. 새봄이 오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그 가지에는 다시금 새싹이 돋아난다. 겨우내 찬바람속의 그 힘든 인고는 곧 새봄을 맞기 위한 하나의 시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몸서리치는 추위와 눈보라도 이들의 생명을 꺾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의 죽음도 그것이 곧 영원한 죽음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새 몸에 새싹이 돋아나듯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태어나기위해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하나의 시련이다. 그것은 또한 다시는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에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죽음은 인생의 종말을 뜻하는「피어리어드」가 아닌、새 생명에로 나아가는 하나의 출발 즉「콤마」란 사실을 한잎 낙엽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낙엽과 위령의 달―어쩌면 여기서 하느님의 큰 뜻을 헤야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