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며칠후 도무지 입선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던 저는 서울문화방송국에서 프로듀서 한분이 방송국차를 타고 현지답사를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실감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참으로 장하십니다. 고여사야말로 전체여성의 모범이십니다. 나는 오늘차를 타고 오면서도 참말로 이런 분이 우리주변에 있을 수 있을까하고 원고를 다시 한번 차속에서 읽어 보며왔는데 와서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감회가 깊어지는군요』하며 그 방송국 직원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저에게 찬사와 위로를 해주는 것이었읍니다.
드디어 1975년 12월 1일.
서울 문화방송국창사 12주년을 기념하는 방송국 메인 홀에는 입추의 여지없는 축하인파가 물결지어 넘실대고 있었읍니다.
그 자리에 초대된 하객들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 집 즐거운 잔칫날처럼 희색이 만면하여 행복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생활에 찌들고 병고에 시달려 오그라들고 찌그러진 초라한 군상들.
그들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받아야할 온갖 고뇌와 슬픔과 고통들을 강인한 인간의 의지와 성실한 노력으로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낸 오늘의 수상자라는 영광스럽고 장한 얼굴들이건만 왜 그렇게도 어딘지 모르게 가엽고 슬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이었는지.
우뢰같은 박수갈채를 귓가에 강렬하게 의식하면서 받아든 상패를 앞자락에 끌어안고 저는 다시 금 지나온 내인생의발자취를 더듬어보며 한없이 한없이 감회의 눈물을 흘려야 했읍니다.
그런데 상을 받고 온지 얼마 후 문화방송 라디오전파를 타고 흘러나오는 제인생의 생생한 기록을 들으며 또 한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만 저는 방송국에 원고를 보낸 것을 그만 후회하고 말았읍니다.
거리를 지날 때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의 손을 꼭 붙잡고
『아줌마 나 그 방송 들으면서 많이 울었어요.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우리가 받는 고생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도 고통이라고 사네 못사네 하고 있으니 글쎄 갑자기 부끄러워지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들었는데 차츰 차츰 들어보니 아줌마 얘기잖아요. 그 방송 듣고 아줌마 다시 생각했어요. 이제 앞으로 아줌마를 많이 생각하며 살아갈 것 같아요』
하며 한사코 제 칭찬을 해주었으나 그럴때 마다 저는 오르지 제가 좋아서 제 길을 택한 것이고 또한 저의 길을 열심히 살아 왔을 뿐인데 과연 여러사람들로 부터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자격이 있을까하고 생각하니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 고개를 제대로 쳐들 수가 없었읍니다.
어찌 그뿐이겠읍니까.
전국 방방곡곡에서 청취자들로부터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밀려드는 격려의 편지를 받을 때에는 너무도 과분한 위로를 받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까지 하였으며 경상도에 산다는 어느 아가씨는 추운겨울날 콩나물등이 이고 다닐려면 얼마나 손이 시럽고 귀가 애리겠느냐면서 행운의 네잎크로바를 아로새긴 보라색 예쁜 털장갑과 분홍빛 털목도리를 정성껏 뜨게질하여 보내왔을 때는 눈시울이 뜨겁도록 그 정성과 마음씨가 고마왔읍니다.
물론 처음 방송국에 원고를 보낼 때부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가 걸어온 인생을 자랑하고 싶어서 보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고 다만 상금을 타면 남편에게 약을 해 먹이고 싶다는 부끄러운 욕망때문에 보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제가 무슨 큰 자랑이라도 한 것처럼 되어버렸으니 생각할수록 스스로 부끄러움에 원고를 보낸 것이 그토록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읍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