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평신도의날」을 맞으면 敎階制度上 평신도의 위치가 거론되고 교회가 평신도에게 또는 평신도가 교회에 바라는 일들이 거론되어왔다.
제도ㆍ이론、이런 것들은 원칙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이 원칙들은 한번 정해지는 단계까지가 중요하며 그 다음에는 실천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일들이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할 것 같다.
그런 뜻에서 올해「평신도의날」에는 좀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한다.
마침 요한 바오로 2세 새 교황이 탄생하신 일이 오늘의 평신도에게 어떤 새로운 생각들을 불러 일으킬만하다고 본다.
교황은 전 세계 7억 가톨릭신자의 최고 영도자이거니와、교황과 평신도라는 두 존재야말로 교회의 머리와 손발에 해당해야 교회의 活力 如何를 결정해 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지나친 생각이라거나 지나친 기대라고만 여겨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서 평신도가 느끼게 되는 첫째 것은「풍부한 인간미」일 것 같다.「인간미」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풍부한 인간성을 것이며、인간성은 하느님 性을 닮아서 창조된 것이고、따라서 인간성의 풍요가 하느님나라의 현세적 실현에 직결되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 크게 갈구 되는 요소들 중의 하나가 이「인간미」일 것 같다. 모든 좋은 원리와 좋은 제도들을 가지고 있지만 이것들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지나치게 靜적主義 또는孤立主義경향이 생겨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것은 아마도 가톨릭이라는 커다란 조직체와 탁월한 원리들이 특히 성직계에 은연중 조장해준「權威意識」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러한 권위의식과 거리가 먼 분인 것 같다. 그분은 성장과정부터가 평신도에서 남다른 친근감을 준다.
많은 수의 추기경들이 소신학교로부터 시작하여 교회교육만 받은데 비해 카를 보이티야 추기경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사회학교에서 한차례 거친 후 로마에 가서 神學을 공부하였다.
그는 사회에서「크라코프」대학에 다닐 때 나치스에 의해 조국 폴란드가 점령되었고 그로인해 그는 한때 채석장과 화학공장에서 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서도 그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고 생명에 위험을 받는 유태인들을 도주시키고 때로는 그들에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고 직장을 알선하는 등 인간애를 행동으로 실천하는데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삶의 고초、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드나들며 인간애와 정의를 위해 행동으로 투쟁했다는 것은 역사의 와중에 불가피하게 그런 운명을 겪는 민중과 일치되는 호흡을 지닐 수 있는 신분의 성직자자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밤 깊도록 기타를 켜며 노래를 즐기기도 하고 스키 타기와 강에서 타는 카누를 즐기기도 한다고 한다.
또 그는 연극과 문학도 좋아하며 이미 네권의 책을 저술했고 수필과 단편적인 글들을 수백편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개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적 불완전성이라든가 재능의 한계 같은 것을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 글을 발표하기를 조심한다. 이러한 태도에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단기간 교황좌에 있다가 서거하신 요한 바오로 1세도 책을 저술하여 文名을 얻은바있었고 이번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이미 글을 많이 발표한분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런 점들은 아마 교회의 최고 정상인 교황까지도 소탈하게、그리고 개방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이 좋다는 것을 새로이 증명해주는 사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글을 많이 발표한분들이 교황에 선출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4세기만에 非이탈리아 출신교황이 되었고 더욱이 공산주의권에 속한 폴란드의 추기경이었다는 점이 현대 평신도의 세계관 형성에 돌파구를 제공하는 점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공산주의 세계권에서도 가톨릭신앙은 건재할 수 있는 실증이 폴란드교회의 예에서 입증된다.
물론 지역에 따라 어려움들은 계속 남아있지만 하느님의 公義로운 진리가 세상의 모든 이데올러기와 또는 다른 종교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힘을 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 사회를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평신도들의 신앙에 이성적인 합리성을 보태어 준다.
또한 성직자들까지도 노동으로 생활수단을 삼는 공산권의 교회현실에서 지원자수가 늘고 있다는 현실은 가난한 교회를 통한 진리의 구현을 입증해주는 점도 있다.
이런 여러 요소들、서민성ㆍ개방성ㆍ초이데올로기성ㆍ가난 등을 새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평신도들은 이 다행한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 현대세계와 지역사회의 쇄신과 저의구현에 매진、명실상부하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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