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 안에는 일반신자들 상호간의 橫的 連帶意識이 점고되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기풍은『하느님 백성들의 형제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本職體現을 위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가까운 실례로 서울돈암동 본당신자들은 금촌 본당 형제들의 聖堂건립을 협조해주었고 금호동 본당신자들은 마석지구 형제들의 公所건립을 지원해주는 등 따뜻한 우애와 連帶를 표현했다.
화재로 소실되었던 原州 학성동본당의 복구사업 때와 완도본당 건립 때에도 그런 超敎區的 연대의식은 유감없이 발휘돼 作藥의 조기완수와 우의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相扶相助와 連帶意識은 본래 初代敎會시절 이래「가톨릭」교회의 오랜 美風이요 전통이기도 했다.
그래서 聖「바오로」는 일찍이「에베소」人들에 대한 편지를 통해『「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들이 되셨으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라』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그러던 것이 中世의 봉건적 地域割抛主義와 垂直的 司牧방식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부터 과거 왕성했던 것도 사실이다.
韓國교회에 있어서도 宣敎초창기의 박해시대엔 신자 상호간의 동지적 결속과 연대의식은 높이 高揭되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 후의 合法布敎시대 들어와 오히려 그런 熱氣는 점차 식어가지 않았던가 생각된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는 교회당국과 신자 개개인사이의 縱的 통치체계로서는 존재했을지 모르나 신자상호간의 유기적이고 橫的인 인간관계로서 또는 사회조직으로서 活性化하지는 못했다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이점을 교회가 마땅히「백성들의 공동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當爲에서 시급히 극복되지 않으면 안될 문젯점으로 남았던 것이다.
교회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聖靈의 힘에 의해 이끌어지고 다스려지는 靈的神秘體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인간에 의해 充員되고 운영되는 人間的관계요 社會的 조직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교회는 그것이 갖는 인간적 사회적 측면의 기능과 사명 실천에 있어서도 결코 등한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조직을 포함해 모든 사회조직과 인간집단의 생명은 그것이 構成員들의 구체적인 필요와 목마름에 과연 얼마나 잘 부응할 수 있느냐 하는데에 달려있다.
소비자 보호단체가 소비자들의 권익을 제대로 잘 대변하지 못하고 勞組가 근로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잘 반영하지 못한다면 그런 단체는 이미 그 존재이유를 잃었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만약 그 공동체적 連帶와 親交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단순한 「典禮의 場所」로서만 使用될 경우 교회가 굳이歷史속의 寔體로서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할 절대적 이유란 遣爽되기가쉬운 것이다.
하다못해 世俗의 어늬 조그마한 사회단체나 契모임까지도 그 구성원들간의 친목과 권익을 위해 존재하노라고 주장하는 판인데, 하물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그 공동체적 連帶와 協同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교회의 사랑을 바라보고 몰려든 양떼들은 과연 어디다 답답한 갈증을 풀어야한다는 것일까.
이점에서 교회의 공동체적 기능의 강화야말로 成年期 한국교회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며, 그것은 일차적으로 신자상호간의 橫的제휴를 확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할 것으로 믿어진다와 그 확산은 교회의 構造物化를 방지하는 최신의 방책이요 敎會의 未來像일 것이다.
본당의 신자들이 서로 相扶相助하는 가운데 형제적인 사귐과 나눔의 공동체를 이룩하고, 그림을 축적, 전파하여 보다 큰 共感帶와 복지連結體를 이룩해 나갈 때서 初代교회를 세우실 당시의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망은 마침내 나래를 펴게 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물론 멀고먼 훗날의 理想을 추구하는 고달픈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멀고 쉽지 않은 길일지라도 그것이「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길일진대 우리는 주저없이 그에 따라 나서야 하는 것이다. 최근의 일련의 超本堂的인 連帶의식의 확산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대견스럽고 주목할 만한 試圖의 하나였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위만 쳐다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위뿐만 아니라 우리의 옆과 주위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다음에 우리를 보시고『너의 형제는 어디 두고 왜 너만 먼저 왔느냐』고 물으실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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