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 유명한 카네기의 유년시절 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
어느 날 어린 카네기는 그의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과일전에 들르게 되었다. 과일전 주인이 고객을 반기면서 어린 카네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어, 이놈 귀엽게 생겼구나. 어디, 너 저 앞에 쌓여있는 앵두를 한웅큼 집어 먹어봐라. 참 맛있게 생겼지? 자 어서』싱글거리며 말하자, 흥조를 띤 어린이는 수줍은 듯 앵두에 눈길을 모으고는 망설이고 있었다. 『뭐 부끄러울 것 없어요. 마음 놓고 집어 봐요. 물론 돈받는 것이 아녜요. 자 어서 어서』그래도 여전히 머뭇거리고만 있자『고맙습니다. 아저씨! 고마워요』고개를 까딱이며 사례하였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이상히 여긴 그의 어머니가『얘야. 너 아까는 왜 통 앵두를 집으려들지 않았지? 너 앵두 좋아하지 않니?』하자, 이 맹랑한 녀석은 그의 어머니 얼굴을 치켜보며『에이, 참! 엄마도. 엄마, 제 손을 좀 보세요. 그 아저씨 손은 제 손보다 몇 배나 더 크질 않아요?』하며 생글거렸다고 한다.
경제 제일의(第一義)로 변해가는 세상이기에 이런 맹랑한 얘기가 귀에 거슬림 없이 들리고, 오히려 비범한 취부자의 유년시절이 과연 다르다고 갈채까지 보낸다. 어린이다운 천진한 행동이 타산에 밝은 성인(成人)들에 의해 지나치게 각색된 얘기겠지만 좋게 들리지가 않는다. 약싹 빠른 타산보다 순후한 정신이 더욱 아쉬워지는 세대인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얘기가 창세기25장 끝에 나온다. 허기진 형 에사우에게 아우야곱이 떡과 불콩죽 한 그릇으로 약싹 빠르게 장자권을 사버리는 얘기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차원에서의 신학적 고찰이 있지만 그것을 읽고 처음 느껴오는 감정은 그리 당당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흔히 아동교리 시간에 이 얘기를 듣는 꼬마들에게 교사는 덜 소화된 자기 사상을 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미련하고 경솔한 예사우를 정당하게 말해줄 수 없듯이 야곱의「교활성」도 그렇게 칭찬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정리(情理)나 사랑을 빼버린다면 이 땅의 모습은 태초의 흔돈(CHAOS)이 있을 뿐이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온정(溫情)이 샘솟는 전통위에 살아온 우리에겐 야곱의 행동에 거부반응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야곱의 잔꾀가 세상을 주름잡고 생존경쟁의 영웅으로 공인될 때가 많다. 과연 옳은 사고방식일까?
모두야곱처럼 되어가고 있고 야곱처럼 산다면 세상이 무엇으로 변할지는 자명한일이다.
우리가 지상생명을 계속하는 동안은 재화(財貨)가 불가결의 요소이다. 그리고 세계가 복잡해져 가면서 재화취득의 수단으로서의 타사능력이 비상하게 발전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 타산능력이 어느 개인이나 국가의 이기심에 편중될 때 많은 이들을 불행으로 몰아내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에사우에게도 눈을 돌려봄직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진수성찬(장자권)을 포기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많은 것이다. 비록 에사우가 우직하고 경솔하여 주님이 내신 산수시험지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지만 산수개인지도 선생이라도 두어서 새로이 산수 공부를 시켜봄직도 하였을 텐데…. 구제불능의 낙제 점수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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