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을 맞이한 우리는 장차 오시는 주님을 합당히 맞기 위하여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과 자세와 생활을 가다듬을 뿐만 아니라 오시는 주님에게 드릴 선물로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실천해야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총을 우리의 불우이웃들과 나누어 누림으로써 오시는 하느님이 모든 인간의 구원이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주님은 세상의 비참한사람, 고동받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셔서 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시기에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들은 가난으로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 병고로 신음하고 고통받는 이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 노인들과 고아들,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 중 참으로 불우한 이웃들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함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계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우리들의 이웃사랑은 실천이 수반되지 않는 말만의 사랑에 그치어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성찰컨대 우리의 사랑의 열도는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열도에도 못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앞장선 이재민이나 불우이웃돕기 운동에 우리가 얼마만큼 참여했으며 희생을 바쳤던가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웃들과의 인간관계나, 상호협력,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희생과 봉사 면에서 갈라져나간 형제들에 비할 때 우리는 너무 냉혹하지 않았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의 사랑은 하루속히 이기주의적 자기중심의 사랑에서 벗어나야한다. 성서에 나오는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 이야기에서도 그 부자의 인격이나 사생활이 나빴다는 것이 아니고 또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도 아니고 오직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리면서 선한일, 즉 불우이웃을 돕지 아니한 것이 바로 그의 죄가 되어 죽어서 고통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무자비한 사람은 무자비하게 판단을 받지만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보ㆍ2ㆍ13)고한 바를 우리는 명념해야한다.
또 우리가 불우이웃을 도와야 함은 그들 불우한 이웃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들이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고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아주고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준 것이 바로 그리스도에게 베푼 것이라 하시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최후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시고「가장 보잘것없는 한사람에게 베푼 것이 곧 내게 베푼 것이다」(마태오25ㆍ40)고 하셨음에도 우리는 아직 이웃의 고통 받는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정의와 평화를 부르짖기 전에 먼저 불우한 이웃을 도우는 사랑의 불은 질러야한다. 주님은「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읍니다. 이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겠읍니까」(루까12ㆍ49)라고 하셨고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음에도 우리의 사랑의 불은 좀처럼 타오르지 않고 있다. 먼저 이불이 타지 않고는 정의와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불로 세례를 받았음에도 그 불길을 전하지도 못하고 어쩌면 그 불씨마저 꺼진 상태에서 타지 않는 목석으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의 사랑과는 그 차원이 달라야한다. 그것은 우리의 사랑은 그리스도적인 사랑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먹고 입고 쓰고 남은 여분을 다만 감정적으로 동정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꼭 필요하고 요긴한 몫을 나누어 자발적인 원의로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고자 인격적인 사랑과 봉사와 희생을 기쁨으로 실천하는 애덕의 소산이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불우이웃에 대한 사랑은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고 불우한 그리스도의 고통이 동참하는 것이어야 한다. 쓰고 입고 먹고 남은 것을 베푸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불우 이웃돕기에 여분이나 여유가 없다는 핑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적인 사랑이 없는 증거이다. 또 우리는 이때를 기하여 불우이웃들을 찾기 위해 세상의 밝은 면, 즐거운 면, 화려한 면 보다는 어둡고 슬프고 비참한 국면들을 더욱 살피고 보고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우함에 함께 동참하고 그곳에서 고통 받는 그리스도와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단위 공동체(가정지구사도직단체 본당 교구)별로 불우이웃을 돕는 사라의 불길운동을 전개해야한다. 나아가서 불우이웃돕기의 기금조성을 위한 개발 사업등의 중ㆍ장기계획도 수립되어야한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교회 내에 공인된 자선적인 사도직단체, 예컨대 인성회나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등에 가입하여 불우이웃을 돕는 사랑의 대열에 너도 나도 기쁨으로 참여해야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신비체의 참된 사랑의 공동체성을 세상에 드러내어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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