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광주교도소 사목을 담당하여 푸른 수의의 죄수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지는 햇수로 겨우 2년이다. 교도소 사목을 맡게 된 후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보고 있지만 본당을 맡고서 교도소사목까지 하자니 여간 사정이 딱한 것이 아니다. 어떤 날 교도소 방문 중 문득 무등산사건의 장본인 박흥숙 군이 기억에 떠올라 확인해보았더니 사형으로 확정되어 수감중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내심으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수번885번을 가슴에 달고 교도관의 인솔로 나에게 소개된 박흥숙은 그렇게도 평화스러울 수 없었으며 조그마한 체구에 건장한 모습을 띈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마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자는 생을 체념한 쓴 모습이 아니겠느냐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생을 달관한 평온을 풍겨주는 모습이었다.
이런 청년이었구나、하는 순간 나의 뇌리는 그때 사건 당시의 떠들썩했던 국내 여론으로 비상했다.
무등산 사건이후 철거시비가 국회 대정부 질의에까지 번져 그동안 주택난의 문제가 첨예화 된 한 예라고 지적하였고 뜻있는 시민들의 염려하는 소리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한편 그 당시 국내 뉴스들은 이사건의 근본적인 발생 요인규명과 대체제안에는 소홀히 하고 그들 일컬어 무등산 독수리 혹은 한국판 이소룡ㆍ타잔 운운하여 이사건 방향감각을 대중성 연합으로 끌고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 나이 어린 청소년 박흥숙은 결코 잔악무도한 패륜아가 아니었고 평소효심이 지극하였다고 들한다. 열여섯 어린나이에 아버지와 형을 차례로 여의고 나서 어머니에게는 효자로 어린동생들에게는 가장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살고자 발버둥쳐 온 장한 소년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독학으로 중고등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사범고시 1차 시험까지 치뤘 던 것이다. 이처럼 최악의 가난을 딛고 새로운 삶을 갈망하면서 그가 겪어야했던 처절한 몸부림은 그가 어떤 인간이었던가를 단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쓰러진 박군의 토담집 천정에는 박군의 글씨로『노력 없이는 무엇도 이루어 질수 없다. 직눈물나는 고생을 두려워 말라』는 좌우명이 예쁜 글씨로 씌어있었다고 전남 매일신문에 보도된 바도 있다.
매일 정성껏 써온 그의 일기장 끝에는『어머님 안녕히 주무십시오ㆍ뼈를 깎고 피를 짜서라도 어머님 은혜에 보답 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문제가 된 그 무허가 움막은 열여섯 살 때에 집이 없고 가나하였기에 식모살이를 떠난 어머님과 누이동생、할머니를 생각하고 60여일이나 걸쳐서 칡뿌리를 삶아 먹어가며 지어서 그걸 어머니에게 선물로 바쳤다라고 그의 일기에 쓰여 있고 재판 중에 이를 진술하여 모든 방청객을 울게 하였다 한다. 차제에 박군의 구명운동이 경향각지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난 5월 8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사형확정이 된 후에도 구명회의 이름으로 연대서명 탄원하는 진정서가 대통령각하의 사면을 호소하는 최후탄원으로 법무부 등지에 제출된바 있다.
본인 또한 한 생명을 구하려는 이일에 쾌히 서명한 바 있고 다른 신부님들도 다투어 서명해 주시었다. 죽음의 그림자를 응시하면서 오히려 태연한 자세를 감추지 아니하는 그의 모습은 결코 뻔뻔스런 오기와는 거리가 먼 차분함을 풍겨준다.
우리가 이런 생명을 살리고 자하는 의도에 추호의 반감이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연말성탄절을 맞이하여 불우이웃에 많은 손길을 돌린다. 박군의 경우는 한낱 불우의 대상으로만 넘겨버릴 수 없고、그보다 차원 높은 생명의 존귀와、사회적 관심사로 사려 깊게 접근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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